자산재평가 의무공시해야

자산재평가 의무공시해야

정호창 기자
2009.03.0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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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악용 가능성.. 투자자 보호책 필요

이 기사는 02월26일(08:34)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는 한국회계기준원에 긴급 요청, 기업회계기준 일부를 개정했다. 주요 개정내용은 '유형자산 재평가 허용, 외화위험요소가 포함된 특정파생상품 평가 유예, 비상장중소기업에 대한 특정일 환율 적용' 등이다.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환율 급등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회계부담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다. 상당수 기업들이 통화옵션상품(Kiko) 피해 등으로 인해 자본 잠식상태에 빠지거나 상장폐지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련된 개정안 중 '유형자산 재평가 제도'가 최근 국내 금융시장의 화젯거리다. 국내 기업들의 2008년 실적발표 시즌을 맞아 주식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IMF 구제금융 시절 한시적으로 허용됐다가 중단된 후, 이번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자산붕괴의 위험에 처하자 부활했다. 유형자산 중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을 재평가할 경우, 10여년간의 가격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는 만큼 대부분 막대한 재평가차익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 자산재평가를 시행한 기업들은 대부분 '토지'에 한정해 재평가를 시행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이로 인해 이들 기업의 부채비율이 급격히 개선됐고, 덩달아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문제는 이렇듯 기업 재무구조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산재평가 결과가 의무공시사항이 아닌 자율공시사항이라는 점이다. 재평가 결과를 공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변경된 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자산재평가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기업의 자율 선택사항이므로 공시도 자율사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의 경우 자산재평가를 시행해 결산실적에 반영하고도 이에 대한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자율공시이기에 귀찮거나 필요를 못 느껴 공시를 하지 않은 기업도 있겠지만, '의도'를 갖고 일부러 자산재평가 내용을 숨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기업도 상당수다.

최근 자산재평가 결과를 공시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자산재평가의 힘은 막강하다. 전년보다 재무구조가 상당히 악화돼 부채비율이 100% 이상 올라간 기업도 자산재평가만으로 전년 수준의 부채비율을 갖게 되거나, 오히려 더 낮은 부채비율을 기록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회사가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큰 오해를 하게 될 우려가 있다. 기업의 영업실적이나 재무상황은 실제로 나빠졌는데 재평가로 인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넘어 잘못된 투자판단을 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또 동일한 업종의 기업들을 비교할 때 재평가를 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비교하는 일 등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어 혼란이 가중된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자산재평가 때문에 투자자들이 위험에 내몰리는 걸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자율공시'를 '의무공시'로 전환하거나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도 선택이 기업의 자율이므로 공시도 자율'이라는 말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선택의 자유를 줬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닌가. 과거 탁상행정을 일삼던 공무원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이지, '경제살리기'와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 건 정부에서 나올 말은 아닐 것이다.

선진국들이 매년 공시제도와 회계기준을 가다듬는 이유가 '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모든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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