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형 헤지펀드, '워스트 시나리오'

[기자수첩]한국형 헤지펀드, '워스트 시나리오'

엄성원 기자
2011.04.22 08:01

"위에서 밀어붙이는데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금융위원회가 이르면 8월 국내 헤지펀드 운용을 일부 허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는 증시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헤지펀드 도입을 기회로 생각하는 증권사, 운용사도 있지만 대부분 생각보다 빠르고 강한 금융당국의 관련 규제 완화 움직임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눈치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국내 증권·운용사들의 헤지펀드 운용 경험과 인력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는 것.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헤지펀드가 도입되면 국내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계 헤지펀드들에 갖다 바치는 꼴이 될 거라는 말들이 많다.

한 증권사 임원은 "국내 증권사 모두를 합쳐도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IB) 한곳과 경쟁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관계 부처에 수차례 전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라고도 했다.

금융당국은 업계와 달리 금융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헤지펀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순차적, 점증적 도입으로 금융투자업계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를 수 있다.

빗장이 풀리자마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자체 운용능력이 부족한 증권·운용사들은 시장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국계 헤지펀드의 재간접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갓 태어난 국내 헤지펀드들은 직접 진출을 노리는 해외 헤지펀드와 외국 상품을 가져다 파는 경쟁사들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게 '워스트(Worst) 시나리오'이다.

곧 세상에 나올 '한국형' 헤지펀드가 일부의 우려처럼 '자본주의의 악마'가 될지 아니면 정부의 기대처럼 신성장산업에 동력을 공급할 선진금융투자기법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와 준비만이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성과주의나 업적주의가 만들어낸 조바심으로 거사를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때 헤지펀드의 무차별 달러 강세 베팅(아시아 통화 매도)에 눈 뜨고 코 베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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