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발생 원인이 다양해지고 빈도도 증가하고 있다. 지역도 개별 국가에서 인근 지역으로,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확대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의 재정위기를 거쳐 국가간 환율전쟁으로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위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세계화의 진전으로 각국 경제가 더욱 긴밀해진 가운데 글로벌 유동성 및 국제자본이동의 변동성 확대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선진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자리잡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선진국이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 풍부해진 유동성은 그 나라에 머물지 있지 않고 수익을 쫓아 신흥국에 유입되면서 자산가격 버블을 일으킨다.
반대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거나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바뀌면 유입자금이 일시에 빠져 나가면서 신흥국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다. 한 나라의 기초경제여건이 양호하다고 해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가 건실한 국가에는 더 많은 자본이 유입돼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미국 등 선진국의 통화정책이 팽창에서 긴축으로 선회한 이후 신흥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한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당시 폴 볼커를 의장으로 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의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1980년대 초반 정책금리가 20%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국제금리가 치솟고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왔던 남미국가들의 외채상환부담이 가중됐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외채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신흥국 위기의 범위가 확대됐다. 1994년경 미 연준은 오랜 기간 유지했던 3%대의 정책금리를 6%까지 인상했다. 이후 멕시코에서는 자본유출이 확대되고 이른바 '데킬라위기'가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정책금리 인상으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일본 엔화가치는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까지 50%나 절하됐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경쟁력 약화로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확대되고 단기외채도 크게 증가했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웃국가로 급속히 파급되며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1998년에는 러시아도 외환위기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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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미 정책금리가 1%에서 5.25%까지 인상된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던 미국의 저금리와 팽창적 통화정책은 과도한 부동산 대출을 일으키고 주택가격의 거품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금리가 인상되자 주택가격의 거품붕괴와 금융기관 손실을 낳으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이어졌다. 2008년 9월에는 리먼브라더스사가 파산하며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까지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지난달 미 연준이 출구전략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통화정책 방향이 조만간 바뀌려 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출구전략 시기와 방법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간 미국이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공급한 돈이 엄청난 데다 유럽이나 일본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 연준의 언급만으로도 주요국 국채금리가 벌써 오름세를 타며 국제자본흐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신흥국에는 또다시 리스크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있을 때마다 신흥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니 어딘가 하소연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제는 국제사회에 신흥들의 입장을 당당하게 주장해야 할 때다. 개별 국가차원의 노력 못지않게 선진국 주도하의 국제통화체제와 무분별한 자본이동에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이다. 실질적인 국제사회의 공조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