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CP등 2.3조 중 개인 비중 1.5조… 기관·큰손 이미 빠져나가
뭉칫돈 넣은 4.7만명 불완전판매 논란

"평생 살림만 하던 60대 주부가 뭘 알고 투기를 했겠습니까. 무식하고 무지했던 게 죄죠. 물 한모금이 안 넘어갑니다."
동양그룹 사태의 불똥은 맞은 것은 결국 '개미'들이었다. 기관투자자들과 고액자산가들은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눈치채고 재빨리 발을 뺐지만 소규모 개인투자자들은 뒤늦게 고금리 유혹에 넘어가 원금 손실 우려에 시름을 앓고 있다.
26일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동양그룹 회사채와 CP(기업어음)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가 250건 접수됐다. 지난 23일 동양그룹 위기설이 급물살을 탄 뒤 총 370건이 접수됐다. 위기설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의 진정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접수가 폭주하면서 금융소비자원 인터넷 사이트는 세차례나 다운됐다.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종합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들이 대다수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투자했다는 글이 많다.
전문가들은 일부 '꾼'을 제외하면 동양그룹 회사채와 CP에 수억원씩 투자한 '큰손'은 많지 않다고 파악하고 있다. 최근 빚어진 동양증권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인출 사태 당시에도 CMA나 ELS(주가연계증권)의 안정성을 묻는 고액자산가는 있었지만 회사채나 CP 투자와 관련한 문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원희 KDB대우증권 PB(프라이빗뱅킹) 클래스 서울파이낸스 센터장은 "CMA 계좌에 넣은 돈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문의하는 고객이 더러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큰 손실을 볼 것 같다고 걱정하는 고객은 없었다"며 "다른 PB센터도 조용한 편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증권사 PB는 고액자산가들이 주고객이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동양그룹의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실제 대부분의 대형증권사에서 고액자산가들에게 권유하는 포트폴리오에서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은 빠진 지 오래다.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일반 개인투자자가 동양그룹 CP나 회사채 투자에 몰린 것은 높은 금리 때문이다. 동양은 그동안 7~11%대의 고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다음해 1월 발행한 1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11.5%에 달했다. 지난달까지 발행한 회사채 금리는 조기상환 옵션에 따라 7.60%와 8.30%로 시중 은행금리의 3배에 가까웠다. 동양 회사채 1년 6개월물에 5000만원을 만기까지 투자했을 경우 이자소득세 15.4%를 제하고 매달 18만원씩 총 334만원을 받게 된다.
금융당국은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와 CP 2조3000억원 가운데 개인투자자가 가져간 물량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65%가 넘는 비중이다. 개인투자자만 4만7000명 규모다. 시장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5만명에 달하는 고객에게 광범위하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독자들의 PICK!
금융소비자원에 접수된 사례 중에서도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내용이 적잖다. 한 투자자는 "CMA 계좌에 1514만원을 넣어놓고 있었는데 동양증권 ○○지점 직원 △△△가 몇 차례나 전화해 지난 11일에 이자가 6.1%인 곳으로 투자하라고 권유해 전자단기사채신탁에 가입했다"며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불완전판매가 있었다 해도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회사채를 발행한 회사나 판매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과거 논란이 일었던 LIG건설이나 웅진홀딩스의 경우에도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법정 다툼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걸린다.
시장 일각에서는 투자자 책임론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회사채나 CP 등 위험을 안고 투자하는 경우 최종 책임은 투자자가 질 수밖에 없다. 동양의 경우 고금리에 취한 투자자들이 원금과 이자를 되풀이해 재투자했던 중독 성향도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처음에는 100만원 단위로 조심스럽게 투자하다 이자를 몇 번 받고 나서 1000만원, 1억원 등으로 단위로 늘린 경우가 적잖다"며 "지난 4, 5월만 해도 일반 청약 때 물량을 못 구하면 뒤늦게 웃돈을 주고라도 사려는 투자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금융당국이 동양그룹 위기설을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다 문제를 키웠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당국이 오는 10월부터 증권사가 투기등급의 계열사 회사채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꿔 동양그룹의 돈줄을 죄면서도 투자자 보호에는 소홀했던 만큼 마냥 투자자 책임으로 결론낼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 광진구의 30대 직장인은 "부모님이 노후자금으로 모은 1억원을 모두 투자했는데 잘못될 경우 돈도 돈이지만 혹시 나쁜 생각을 하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