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B업계 망치는 두 가지 '갑을관계'

[기자수첩]IB업계 망치는 두 가지 '갑을관계'

박진영 기자
2013.10.22 17:47
박진영 머니투데이 기자
박진영 머니투데이 기자

"증권사 직원이야말로 '을 중의 을'이에요"

IB(투자은행)업계 사람들은 멋있다. 값비싸 보이는 정장을 차려 입은 고액 연봉자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IB업계 선수들의 얘기는 다르다.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되는 갑을관계로 따지면 '을 중의 을'이라는 하소연이다.

우선 회사채나 CP(기업어음)을 발행하는 기업과 관계를 보자.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증권사와 발행 주관 계약을 맺고 발행 규모와 금리 등을 논의해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고객인 기업이 갑, 증권사가 을이다.

시장에서 인기 있는 회사채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낮은 금리를 고집할 때는 '을'의 고충이 커진다. 수요예측과 청약에서 팔리지 않은 회사채는 대부분 발행 주관을 맡은 증권사가 인수해야 한다. 이렇게 떠안은 회사채는 발행금리대로 팔리지 않아 발행기업에서 받은 수수료만큼 할인해 판매하게 된다. 이른바 '수수료 녹이기'다.

한 증권사 채권 영업 관계자는 "미매각될 걸 알면서도 주관사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남는 것은 없지만 발행기업과 관계나 수주 기록(트랙 레코드) 축적 등의 이유로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신용평가사의 관계도 철저한 갑을관계다.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재무상태를 평가하는 권한은 신평사 애널리스트가 쥐고 있지만 실상은 칼자루를 기업이 휘두르는 구조다.

회사채나 CP를 발행하는 기업은 두 군데 이상의 신평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으면 된다. 신평사 3곳이 경쟁하는 시장인 만큼 가장 까다롭게 구는 신평사는 피해갈 수 있는 구조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가 수수료를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기업이 유리한 신평사를 골라 잡는 '등급쇼핑' 관행이 근절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갑으로, 때로는 을로 살 수 밖에 없는 게 사회생활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조차 갑을관계가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건전한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채권 발행이나 신용 평가에서 증권사나 신평사가 처하는 을의 고충보다 더 중요한 점은 투자자들의 돈이 개입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갑을관계를 떠나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가 필수다.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금융감독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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