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군사기업(CMC) 기업공개(IPO) 투자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논란이 제기된 국민연금이 투자대상의 CMC 지정 여부를 걸러내는 스크리닝(선별) 절차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인 것으로 14일 파악됐다.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 등 동맹 역할 확대 압박에 직면한 가운데 공적연금은 CMC 자본조달에 기여하고 있어 향후 대미 외교·안보 협상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CMC는 중국 인민해방군 직·간접 연계, 군민융합 기여 등을 이유로 미국 전쟁부(국방부)가 지정하는 조달사업 참여 금지 블랙리스트 기업이다.

국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측은 최근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실에 국민연금의 중지이노라이트 IPO 투자 경위를 보고하면서 기존 제재 위험 점검 체계가 CMC가 아닌 미 재무부 소관 금융제재 대상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내부 기금운용본부 투자 원칙을 검토해보겠다고 답한 뒤 관련 인사들이 국회에 보고한 것이다. 중지이노라이트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광트랜시버(전기신호와 광신호를 서로 변환하는 장치)를 생산하는 중국 광통신 장비업체다.
복지부 보고 내용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블랙록에 운용을 위탁한 해외주식 계정으로 블랙록 산하 펀드들과 함께 중지이노라이트 코너스톤 투자 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했다. 블랙록은 2023년 미국 하원 중국공산당특별위원회(중국특위)로부터 MSCI와 함께 대중국 투자 관련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중국특위는 2024년 보고서에서 미국 금융기관이 정부 블랙리스트 등에 오른 중국 기업들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고 집계하고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입법도 권고했다. 이후 실제로 미국 개별 주들에서 주법 제정 등을 거쳐 공적연금의 중국 시장 이탈이 현실화하고 있다.
복지부 측은 의원실에 국민연금 직접투자는 기존 금융제재 점검 체계에서 걸러지고 해외 펀드 투자도 해당 펀드가 자체적으로 필터링하는 체계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달리 보면 CMC 지정은 금융투자를 금지하는 제재가 아니기에 국민연금의 스크리닝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 전쟁부가 지정하는 CMC는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 등을 식별하는 명단이다. 미국 전쟁부는 국민연금의 코너스톤(상장 전 사전투자) 계약 42일 전 중지이노라이트를 CMC로 지정한 상태였다.
CMC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지정하는 금융제재 대상과 달리 지정 자체로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명단은 아니다. 다만 지난 6월30일부터 미 전쟁부가 CMC 지정 기업과 물품·서비스·기술 조달을 위한 신규 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되는 등 CMC 지정에 실제 조달 제한이 걸리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중국 등 외국 통제를 받는 기업이 생산한 광트랜시버 등을 탑재한 통신장비의 미국 내 승인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중지이노라이트에 대한 추가 규제 우려도 제기된 상태다.
김 의원도 국회에서 국민연금 투자심의 과정에서 지정학적 위험을 공식적으로 다루는 사전 검토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MC 기업 투자가 미국의 추가 제재에 따라 자산가치 하락이나 금융거래 제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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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측은 의원실에 금융제재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펀드 차원에서 투자 비중 조정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배정받은 물량은 2027년 1월29일까지 원칙적으로 매도가 불가능하다. 홍콩 증시 제도상 코너스톤 투자에 따른 보호예수기간 적용을 받는 것이다.

학계에선 한국 공적연금이 중국 측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설 경우 대미 외교·안보 관계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후자산을 미 정부 블랙리스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국익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이란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보내 줄 것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요청했다. 한국군 자산 등 파병 안건도 한미 간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 관련 한국이 이란 관련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는 등 압박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 미중 전략 경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서 노후자산이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에 말려들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중지이노라이트 IPO 투자와 관련, 지정학적 위험이 극대화할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미국의 기본적 입장은 중국 하이테크 기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제재 대상으로 묶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이 위험을 낮추는 행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투자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CMC 투자 경위 등에 대해서도 불투명하게 밝혀 왔던 점이 연금 수급자이자 시장 참여자인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다만 중국 AI 공급망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연기금이 규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노후자산 증식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은 CMC 지정 여부를 사전에 인지했는지에 대한 머니투데이의 질의에는 답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