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우럭조개와 생굴무침 그리고 '난감한 사랑'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저는 <녹두꽃>출신 시인입니다. 굳이 시력에서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데요. 고등학교 3년을 문예특기장학생으로 다녔고, 대학 2학년 때 개천예술제 백일장 대학일반부 장원으로 문학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문청들의 꿈인 신춘문예에라도 응모해볼 만했지만, 그런 것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딱히 ‘문청시절’이란 게 없었으니까요.
고등학교 3년을 문예특기장학생으로 골병(?)이 들다보니 대학에 들어가서는 문학엔 관심을 접다시피 한 거지요. 상을 타야 할 현실적인 이유도 없어졌고요. 그러다 불쑥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진주성에서 열린 개천예술제 백일장에 혼자 걸어가 몇 줄 쓴 게 용케 장원을 차지했던 거지요.
대학 졸업하고 발령 받고서는 교단일기 형태로 다시 시를 쓰긴 했는데요. 그러다 <민중시>에 시를 보내 추천이 내정됐으나 ‘민중교육지사건’과 함께 <민중시>시가 폐간되고, 91년에야 당시 <노동해방문학>과 함께 진보문예지의 두 축을 이루던 <녹두꽃>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것이지요.
이렇게 빼도 박도 못하게 민중시인, 또는 민족시인으로 낙인찍힌 저를 일약 서정시인으로 둔갑시킨 시집이 바로 세 번째 시집 ≪등뒤의 사랑≫인데요, 사실 시인이면 다 서정시인이지 민중시인이 무엇이며 민족시인은 또 뭐랍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