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클린2015]<9>'잊힐 권리' 유럽에선 인정…국내 도입 위해선 범위와 합의 필요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모든 정보는 기록되고 검색됐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구글이 있다면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한한 정보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지만, 그 열기는 채 반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찾고 싶어 하는 욕망만큼,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가 검색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 명예훼손이나 사이버폭력 등 불법적인 게시물에 대해서는 대부분 국가에서 기존 법령으로 충분히 삭제처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합법적으로 생성된 정보지만, 지금은 유효기간이 지났고 본인에게는 불편한 정보들의 처리 문제다.
EU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는 소위 '잊힐 권리'를 적응 인정했다. 하지만 잊힐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잊힐 권리가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검색에서 사라질 권리를 허(許)하라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스페인 구글부터 시작이다. 2010년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자 곤잘라스는 구글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했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가 나온 것.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인 1998년 연금을 제때 내지 않아 집이 경매에 처한 내용이 담긴 기사가 노출된 것이다.
곤잘라스 변호사는 이젠 형편도 나아졌고 빚도 다 갚았으니 그 신문 내용은 자신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정보라고 생각했다. 그는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에 기사와 검색결과 노출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은 기사는 삭제하지 않되 구글 검색 결과 화면에서는 관련 링크를 없애라는 결정을 내렸다. 구글은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제소했다.
결국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결과에 링크된 해당 웹페이지의 정보가 합법적인 경우에도 링크를 삭제할 의무가 있다"라며 곤잘레스의 손을 들어줬다. '잊힐 권리'를 제도적으로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후 구글은 유럽에서 잊힐 권리에 따라 원치 않는 검색결과를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모두 100만건 이상이 접수됐지만, 그중에서 구글이 검색결과를 제한한 것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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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판결은 그 정보가 합법적이고, 온라인에서 이미 공개된 정보일지라도, 특히 명예훼손적이지 않고 진실에 부합하며, 공공에 관한 것이고 해악을 끼치지 않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라면 링크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결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해당 정보가 노출돼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공익보다 크다는 판단인 셈이다.
하지만 EU는 어디까지나 이를 특정인의 이름으로 제한을 두었고, 다른 키워드로 검색을 할 경우에는 그대로 검색결과로 노출된다. 이는 '잊힐 권리'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지만 잊힐 권리의 남용이 '역사 지우기'로 가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 잊힐 권리, 정보삭제권이냐 검색 배제 요청 권리냐
잊힐 권리를 두고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에 '자신이 인터넷에 남긴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권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거대한 복사기이기 때문에 한번 게시물을 남기면 무한대로 퍼져갈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과거 자신이 남겼던 기록이 현재의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다.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게시물을 지워달라는 요청도 잊힐 권리의 정당성 근거로 자주 사용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과거 이성 친구와 가졌던 성관계 동영상이나 유출돼 인터넷에 떠돈다든지, 자신에 대한 비방이나 욕설과 같은 게시물에 대한 삭제도 잊힐 권리가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게시물이 생성될 당시에는 합법적이던 것이라도 이제는 자신에게 불편하고 정보로서 유효기간도 다한 정보라면 이를 삭제되게 해달라는 요청도 있을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이 올린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2차 3차로 유출된 상황에서는 게시물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각 게시판 담당자에게 자신임을 증명하고, 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게시물일 경우에는 이미 존재하는 법으로도 충분히 게시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명예훼손 게시물이나 음란물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망법)이나 형법으로 충분히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EU가 인정한 잊힐 권리는 바로 마지막에 해당한다. 그것도 게시물의 직접적인 삭제가 아니라 검색 결과에서 노출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잊힐 권리'다. 그것도 모든 검색결과에서 게시물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의 이름으로 검색할 경우 해당 게시물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다.
◇ 잊힐 권리, 역사 지우기 돼선 안 된다
잊힐 권리의 행사 범위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게시물에 대해서 검색 결과 노출을 제한하는 차원에 그쳐야 한다. 불법적인 정보들에 대한 삭제 요구권은 다른 법률적인 범주에서 다뤄야 할 문제이지 이러한 부분까지 잊힐 권리의 적용 범위로 다뤄버리면 잊힐 권리가 보편타당한 권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잊힐 권리를 누가 행사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정보에 대한 민주적 접근이 어려운 국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역사 지우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행했던 과거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는 검색에서 노출이 안 되게 하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기록까지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국가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내밀한 영역의 사생활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으로 바뀌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잊힐 권리는 공권력이 동원되는 법제화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합의를 끌어낸 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도출해야 한다.
구태언 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삭제대상인 개인정보의 판단을 공적으로 해야 한다"며 "인터넷에 공개된 사적 기록은 공적 기록이라는 특성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사적으로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다면 권리행사가 쉽게 가능한 사람에게 유리한 정보만 남아 결국 왜곡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잊힐 권리, 국내 적용은 어떻게 되나
EU가 잊힐 권리를 특정인의 이름에 대한 검색 결과에서 본인이 불편해하는 과거 기록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프라이버시에 주안점을 두고 정립되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아직 명확한 개념 정립이 안 된 상황이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망법, 형법, 언론중재법 등 기존 사법 체제는 물론, 임시조치, 각종 심의제도 등을 통해 각종 불법 정보에 대한 삭제 및 차단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황창근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는 다양한 사법체계를 통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범위라면 법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입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잊힐 권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이 안 돼 있어 많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불법 정보들의 삭제 권리로 인식해, 이를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불법 정보나 자신이 직접 생성한 정보들에 대한 삭제권을 인정하는 것을 잊힐 권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잊힐 권리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자, 방송통신위원회도 공청회를 여는 등 입법 마련을 위한 의견수렴에 들어간 상태다.
방통위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민원으로 본인의 과거 행적 기록의 삭제가 필요한 사례와 요구가 많은 현실이 있어 ‘잊힐 권리’를 논의할 필요가 있으나, 권리 화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요구와의 균형에 맞춰 정책적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법령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원들이 증가하는 추세라,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