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교의 내몸읽기]
매년 어버이날이면 두통과 복통, 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한다. 겉으로는 신체 질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심리적 부담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잖다. 특히 가족 안에서 책임을 많이 지는 장남·장녀에게서 이런 양상은 두드러진다.
강동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철 교수는 "어버이날이나 가족 행사를 앞두고 부모님을 더 잘 챙겨야 한다는 부담, 가족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며 "검사상 이상이 뚜렷하지 않은데도 반복적으로 몸이 아프다면 심리적 요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통증이나 불편감이 계속된다면 신체화 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신체화 장애는 심리적 부담이 신경계와 자율신경계 반응을 통해 두통과 복통, 어지럼증, 근육통, 속 쓰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신 교수는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컨디션 저하로만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럴 땐 신체 질환과 함께 현재 겪는 스트레스와 정서적 부담도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남·장녀 스트레스의 핵심은 과도한 책임감이다. 가족 간 갈등이나 부모의 문제를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스트레스는 일시적인 긴장을 넘어 지속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신체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가족을 우선시해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나 형제자매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데 익숙해서 정작 자신의 스트레스 신호는 놓치기 쉽다.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도 단순 피로나 일시적인 컨디션 문제로 넘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 교수는 "가족 내에서 책임을 많이 떠안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늦게 인지한다"며 "나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에 익숙해서 자신의 감정과 내면 상태를 돌아보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스트레스를 오래 방치하면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신체 증상에 그치지 않고 불면·무기력감 같은 정신적 증상이 이어질 수 있으며, 결국은 우울증·불안장애로 진행하기도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반복되면 자책과 억눌린 감정이 쌓여 증상은 더 나빠진다.
신 교수는 "가족 문제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감정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게 되고, 결국 우울·불안으로 이어진다"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그냥 넘기지 말고 전문의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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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증상은 표현되지 못한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조건 참고 버티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좋다', '싫다'처럼 자신의 상태·감정을 보다 분명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 된다.
신 교수는 "신체화 증상은 감정을 계속 억누를수록 심해진다"며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