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미만 '퇴장방지약' 수두룩한데…"청구액 20%" 우대 기준에 '멘붕'

100원 미만 '퇴장방지약' 수두룩한데…"청구액 20%" 우대 기준에 '멘붕'

박정렬 기자
2026.05.12 15:45

'진료 필수' 퇴장방지약 630개 지정
4개 중 1개가 상한금액 100원 미만
정부 '생산 제약사 우대' 추진하지만
청구액, 품목 수 등 기준 높다는 지적도

퇴장방지의약품 가격별 품목 수/그래픽=윤선정
퇴장방지의약품 가격별 품목 수/그래픽=윤선정

환자 진료에 필수적이라 정부가 원가를 보전하는 '퇴장방지약(의약품)' 4개 중 1개가 100원 미만인 것으로 확인됐다. 낮은 수익성은 퇴장방지약의 반복적인 생산 포기·공급 중단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퇴장방지약 생산 제약사를 우대한다면서 '청구금액 20% 이상'을 설정한 데 대해 '탁상행정'이란 지적도 고개를 든다.

12일 머니투데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5월 기준 퇴장방지약 목록을 분석한 결과 총 630개 품목 중 160개가 상한금액 100원 미만이었다. 100원 이상~1000원 미만은 187개, 1000원 이상~1만원 미만 231개, 1만원 이상은 52개다. 유한양행의 이뇨제 '다이크로짇정'이 10원으로 가장 싸고, 녹십자의 사람면역글로불린 '정주용헤파빅주'가 114만800원으로 가장 비싸다.

퇴장방지약은 환자 치료에 필수이지만 약가가 낮거나 시장 규모가 작아 제조·수입이 기피되는 의약품으로, 시장 퇴출을 방지하고 수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부가 원가를 보전해준다. 별도로 비용을 더 주는 건 아니고, 원가를 감안해 상한금액을 책정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조·판매·수입업체의 신청을 받고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뒤 상한금액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보전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퇴장방지약은 이름이 무색하게 퇴장 사례가 빈번하다. 심평원이 지난해 1월 발간한 '필수의약품 안정적 공급을 위한 관리체계 연구'를 보면 2021년부터 2024년 3월까지 공급 중단이 보고된 퇴장방지약은 79개다. 가장 큰 이유가 낮은 수익(채산)성(20.3%)이었고 원료 공급 문제(19.0%), 생산 설비 문제(17.7%)가 뒤따랐다.

퇴장방지의약품 생산 공급 중단 보고 사유/그래픽=최헌정
퇴장방지의약품 생산 공급 중단 보고 사유/그래픽=최헌정

업계에서는 원료비 급상승과 수급 문제, 설비 노후화 등까지 '원가'에 완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약을 판매한들 워낙 저렴해 수익을 크게 낼 수 없으니 아예 생산을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뇌 경련 등 응급 환자에 1차 치료제로 쓰는 퇴장방지약 '아티반'이 공급중단에 직면했었는데, 0.5㎖ 앰풀 한 개에 금액이 782원에 불과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을 내야 하는 제약사는 마진이 작거나 거의 없는 퇴장방지약 생산을 꺼린다"며 "국민 건강에 대한 사명감과 보건당국의 규제가 우려돼 '울며 겨자 먹기'로 생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제약바이오벤처 혁신성장 전주기 협업방안 발표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제약바이오벤처 혁신성장 전주기 협업방안 발표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이하 약가 개편안)에서 퇴장방지약의 원가 보전 기준을 상향하고 최대 10%의 정책개선을 신설하는 등 '유인책'을 내놨다. 이번 약가 개편안의 화두였던 복제약 가격 인하도 퇴장방지약의 공급 비중이 높은 기업은 가격을 우대해주겠다며 '수급안정 선도기업' 제도를 신설했다.

그러나 선도기업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혜택을 볼 기업은 드물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업계에서 들린다. 선정 기준이 △생산 품목 중 퇴장방지약이 20% 이상 또는 △청구 금액 중 퇴장방지약 비중이 20% 이상인데 적게는 100원도 채 안 되는 약을 팔아서는 이를 맞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컨대 특정 퇴장방지약을 50% 이상 생산해도 그 금액이 몇십원에 불과하면 매출액 20%를 맞추지 못해 우대를 못 받는 것"이라며 "고가, 수액제를 생산하는 몇 개 제약사만 혜택을 받을 뿐 소아청소년과 필수 약을 만드는 곳마저도 소외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청구 금액 기준을 낮추던지 사용량을 감안한 청구 건수를 기준으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라며 "시장 규모도 작고, 약가 자체도 저렴해서 퇴장방지약을 지정·지원하는 만큼 '눈높이 제도'가 수립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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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의학 제약 바이오 분야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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