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경제성장 이뤘지만 부패-양극화 등 모순 극심

"우리가 권력이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사하로프 대로에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비판하는 외침이 넘쳐났다. 지난 4일 총선에서 이뤄진 정부 여당의 조직적 부정을 규탄하는 시위였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경찰 추산 3만명, 주최측 추산 12만명에 달했다. 구 소련이 해체된지 20년만에 최대 규모다. 시위대를 바라보는 푸틴의 심정은 배신감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련 해체 뒤 재탄생한 러시아는 10년의 위기와 10년의 성장을 겪었다. 자본주의 초기 10년은 러시아에 고난과 혼돈의 시기였다. 철저하게 통제되던 가격이 전면 자유화되자 러시아 경제는 급격한 혼란에 휩싸였다.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면서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급락했고 초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러시아 국민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상점 앞에서 줄을 길게 서야 했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살림살이를 내다팔아야 했다. 새로운 경제질서가 자리잡지 못하면서 부패가 만연했고 공적 경제와 마피아의 지하경제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8년에는 국고가 바닥나면서 모라토리엄(채무이행 유예)을 선언해야 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던 러시아를 수렁에서 건진 인물이 푸틴이다. 푸틴 집권 8년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7%의 고성장을 이뤘고 현재 세계 4위의 외환보유국,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푸틴은 소련 해체 20주년 기념일에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영웅으로 찬사를 받는 대신 시위대의 돌팔매를 맞아야 했다.
총선 직후만 해도 푸틴은 반대 시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00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지난 12년간 언제나 그랬듯 경제성장과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만 약속하면 국민들은 변함없이 자신을 지지할 줄 알았다. 부정선거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푸틴은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경제성장의 수혜를 본 젊은 '푸틴 세대'를 간과하고 있었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자라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1인 지배와 권위주의 통치를 용납하지 않았다. 소련 해체와 자본주의 실험 20년, 소련 시절의 통제와 자본주의 초기 혼란을 경험하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정치·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러시아는 또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경제적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기성세대도 푸틴이 3번째 대통령직을 겨냥해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강한 카리스마'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확실히 부활하긴 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모순도 기성세대가 푸틴에게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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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하는 백만장자 명단에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많은 국적이 러시아다. 소련 해체 후 혼란기에 국영기업을 헐값에 사들인 당 간부, 젊은 엘리트가 주축을 이루는 '올리가르히'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부를 획득한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데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소비로 러시아 국민들에게 경제적 좌절을 안기고 있다. 이들 덕분에 러시아는 세계적 명품 소비지로 탈바꿈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들의 씀씀이를 보며 박탈감은 느끼고 있다. 수도 모스크바 등 일부 대도시에 인프라와 투자가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낙후된 지역 양극화, 에너지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산업 양극화도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리스크 요인이다.
고질적인 부패와 투명성 부족 역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한 외교관은 러시아에 대해 "정부 활동과 조직적 범죄를 구별할 수 없는 마피아 국가"라고 꼬집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자본주의 20주년을 맞아 경제적 번영을 선사한 푸틴에게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 정치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다. 안타깝게도 푸틴이 이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권력을 놓는 것, 그 한가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