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막오른 '오일전쟁'

# 코로나19(COVID-19)의 이탈리아 등 유럽과 미국으로의 전세계 확산이 현실화된 9일(현지시간) 유가마저 25% 하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감산 조정실패가 원인으로 자연스레 증시와 세계경제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서킷 브레이커’(일시매매중단조치) 발동에도 불구하고 끝내 7% 이상 폭락했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사정은 조금 달랐다. 8~9일 사우디 증시에서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주가는 15% 하락했고 9일 석유메이저인 셰브론과 엑슨모빌 주가는 각각 15.4%씩 하락했다. 하지만 셰일 회사들은 심각했다. 아파치,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등은 50%이상 주가가 떨어진 것이다. 산유국의 기침이 감기 수준이었다면 석유 메이저는 폐렴, 셰일회사는 코로나 감염에 비견될 만 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유전쟁은 미국 정크본드(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이아몬드힐 캐피탈매니지먼트의 존 맥클라인 매니저를 인용해 "월요일이면 시중에 피가 흐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예언은 맞아 떨어져 실제로 9일, 아시아 증시는 물론 미 뉴욕 증시와 유럽 증시 모두 큰 폭으로 급락해 10여년 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위기란 평가들이 잇따랐다.

9일 미 증시에서는 원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측 목표의 직접 타깃이 된 셰일 관련 미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우선 두드러졌다.
아파치 주가는 전일 대비 53.9% 떨어진 9.55달러에 마감했고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은 53.4% 떨어진 12.51달러를 기록했다. 셰브론 주가는 15.4%, 엑슨모빌 주가는 15.4% 하락했다.
유가 전쟁의 불똥은 은행주로도 옮겨 붙었다. 미 에너지 기업들이 재무건전성 악화로 채무 상환이 불가능해질 경우 그 타격은 채권자인 은행들이 고스란히 입게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에너지 기업들은 정크본드를 가장 많이 발행하는 회사로 꼽히는데 이들 기업 발행 규모는 미국 하이일드(투자부적격) 채권 시장의 11% 이상을 차지한다. 투자부적격이란 신용등급에서 BB+ 이하를 뜻한다.
FT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가 13.6% 떨어지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이 14.7% 떨어지는 등 미국 4대 은행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 동안에만 1200억 달러(143조2400억원) 어치 증발했다.
은행주 주가는 2월 들어 금리하락 분위기로 인해 꾸준히 내렸지만 이번 유가폭락으로 인해 대출 채무불이행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단 공포에 2017년 이후 쌓아올린 주가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해야 했다.
독자들의 PICK!
특히 에너지기업이 있는 미 텍사스주나 오하이오주 소형 금융기관들의 주가 하락율은 20~30%로 대형 은행주보다 더 컸다.
로이터는 "자체 조사 결과 석달 안에 미국 석유·가스 부문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물량은 182억달러로 추산됐다"라며 "이들 발행업체 대부분의 신용등급 강등 여부가 주시된다"고 보도했다.
신용등급이 이뤄지기도 전에 일부 에너지 기업 채권은 우려를 가격에 반영중이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에너지 기업 체서피크(Chesapeake)의 2021년 만기 도래 채권 거래 가격은 지난 6일 41.18달러에 형성됐지만 1영업일 만인 지난 9일 11.44달러까지 내려왔다.

"포트폴리오에 '(셰일업체가 몰려 있는) 텍사스'나 '에너지' 이름만 들어가 있어도 무조건 매도가 나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9일 매도세는 에너지 및 이들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들고 있는 은행들에 몰렸지만 전문가들은 위기감이 주식시장 전반에 퍼질 것을 우려했다.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들은 지난 9일 CNBC에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이외 광범위한 고수익 채권 시장에 (위기감이) 전염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꼭 투자등급이 낮은 채권이 아니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전세계 수요 침체에 직면한 항공업계, 자동차업계 등 제조업 전반이 신용등급 하락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단 경고들도 나온다. 규제 기관들은 코로나19 발생 전에도 기업들의 부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단 사실을 지적해 왔다.
지난 1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미국 기업 중 마이크로소프트와 존슨앤존슨 등 오직 두 개 기업만이 무디스, S&P로부터 AAA 등급을 평가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많은 Baa 등급 발행 물량이 금융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니혼게이자이가 인용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회사채 잔액은 지난해 말 시점 13조5000억달러로 추산됐는데 이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 말 시점 대비 약 두 배 늘어난 수치였다.
니혼게이자이는 "OECD는 (만기가 남은 회사채는) 신용도가 낮고 만기가 길어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가 취약하단 점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