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이란, JCPOA 종료 선언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종료 선언으로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향후 새로운 방식의 핵협상이 도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JCPOA 종료 후 양국 관계를 살펴보고 향후 핵협상의 향방을 전망해 봤다.
지난 18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2015년 서방과 체결한 JCPOA가 공식 종료됐다며 자국 핵프로그램에 대한 각종 제재의 효력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영국·프랑스·독일은 이란이 JCPOA를 중대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지난 8월 유엔 안보리의 스냅백(제재 복원) 절차를 시작했다.
JCPOA가 종료되면 그동안 이란 핵개발을 규제해 온 '안전핀'이 사라지면서 핵활동 재개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6월 이란과 이스라엘의 '12일 전쟁'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체계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JCPOA까지 종료되면 이란 핵활동에 대한 규제나 의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스냅백 발동으로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이란이 핵활동을 재개할 유인도 커졌다는 평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활동을 재개할 경우 공습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해 우라늄 농축 금지뿐 아니라 미사일과 방공망이 이전 수준으로 복구되는 것까지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설정했다. 이란이 이를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공습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장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에 따른 부담으로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한다. 이란의 경우 핵능력 복구를 추진하지만 주요 핵 시설과 다수 핵 과학자들까지 타격을 입은 상황이어서 본격적인 우라늄 농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평가다. 또 핵활동을 재개할 경우 즉각 공습하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고를 무시하기 어렵다. 방공망과 레이더망, 미사일 능력 등이 약화된 이란으로선 이스라엘 공군을 상대할 힘이 부족해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핵활동을 시도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도 이란과의 무력 충돌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가자전쟁의 후유증, 정치적 피로, 군사자원 소모가 겹쳐 네타냐후 정부는 또 다른 전쟁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공군력을 앞세워 공습에 성공했지만 이란의 극초음속 미사일 공격에 대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 하에 가자전쟁 휴전이 겨우 성사된 상황에서 다시 이란과 충돌하는 것은 상당한 외교적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
독자들의 PICK!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란은 핵시설을 복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핵활동 재개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스라엘을 견제하던 헤즈볼라, 하마스 등 무장세력들은 물론 시리아까지 무너졌고 현재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밝혔다.
백승훈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전쟁의 필수 요소인 '의지(willingness)'와 '능력(capabiblity)'은 분명히 다르다"며 "이란과 이스라엘이 싸울 의지가 충분하다고 해도 과연 능력 면에서 다시 전쟁을 벌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란은 JCPOA 공식 종료에도 미국과의 협상은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아락치 장관은 중국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공정하고 균형 잡힌 핵협상에 나설 준비가 됐다"며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공동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등한 입장에서 기꺼이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3일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이란에 대한 우정과 협력의 손길은 항상 열려 있다"며 "이란이 준비됐다면 기꺼이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JCPOA 종료가 외교적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협상의 공간을 열어주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 외교 산물인 JCPOA의 종료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만의 '뉴딜(New Deal)'을 추진할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도 유명무실해진 JCPOA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상 구조를 모색할 여지가 생겼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기존 JCPOA를 복원하는데 주력했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협상을 위한 출발점이 마련됐다는 해석이다.
이른바 '트럼프식 뉴딜'의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되는 것은 아랍에미리트(UAE)의 핵개발 모델이다. 2009년 UAE는 미국과 민간 핵협력협정을 맺으면서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처리토록 규정했다. 만약 핵연료를 재처리하거나 우라늄을 농축했을 경우 협정은 즉시 폐기되며 모든 핵물질과 핵 관련 설비를 미국에 반환토록 했다. 동시에 '최혜국 조항'을 포함시켜 중동 내에서 가장 앞선 수준의 핵활동을 보장받도록 합의했다.
백 전임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은 IAEA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도 모두 보장하는 것으로 이란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긴 어렵다"면서 "이란은 일단 우라늄 농축을 배제한 UAE 모델처럼 민간 핵개발을 추진하고 향후 최혜국 조항을 활용해 이스라엘과 동등한 수준의 핵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