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자유주의 균열… 세계질서 재편 분기점
G2 '다극주의' 부상, 대만해협·남중국해 봉쇄 우려

한 달을 넘긴 이란전쟁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기존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페트로달러(석유거래 달러결제)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큰 변화를 맞이하고 미국·중국을 양축으로 한 다극주의가 떠오른다. 강대국간 힘의 논리가 확산하는 가운데 내년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마저 표면화할 수 있다. 이 경우 호르무즈해협 봉쇄충격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전망이다.
①변화: 대화 통한 해결·국제기구 역할 의문
29일 외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방세계가 수립한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자유무역 △유엔 등 국제기구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자유주의 국가간 집단안보 체제를 골자로 한다.
그런데 상호관세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앞에 이 질서의 존재근거가 흔들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싱크탱크인 중동·북아프리카포럼의 가드 이샤야후 선임연구원은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수행하면서 유엔 승인을 구하지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전쟁 때 했던 것처럼 '자발적 연합'을 통해 동맹국 참여를 호소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유럽은 이 흐름을 막을 힘이 없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9일 "유럽은 더이상 구세계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②균열: 페트로달러·미국 기축통화 흔들
이같은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약속은 기존 질서를 떠받친 또 하나의 기둥이다. 미국은 미국 달러로만 원유를 결제하도록 사우디아라비아와 약속했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동지역 안보와 원유수송을 보장했다. 사우디는 원유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에 투자했다. 이런 거래방식은 중동 산유국들까지 확산했고 미국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누려온 바탕이다.
그런데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막고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한 유조선을 통과시켰다. '달러결제'만 하면 원유의 '자유항행'이 가능하던 시대가 끝난 셈이다. 중국 위안화가 달러를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낮지만 러시아 루블, 인도 루피 등이 함께 쓰이면 달러패권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③충격: 대만해협 막히면 호르무즈 봉쇄보다 파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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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남중국해 갈등이 세계질서 재편의 다음 분기점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제2의 호르무즈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인도네시아) 사이 말라카해협,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 대만해협이 될 공산이 크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같은 싱크탱크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중국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일대를 봉쇄할 가능성을 연구했다. 남중국해는 전세계 원유 해상운송량의 45%, 전자제품의 31%가 지날 정도로 역할이 크다. 이곳이 막히면 대만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이 중단되고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향하는 무역로가 직접 위협받게 된다.
한편 유럽의 균형추 역할을 포기하는 듯한 입장에 비판도 제기된다.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국제문제연구소장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언에 "민주규범에 대한 포기"라고 가디언 기고를 통해 비판했다. 토치 소장은 이어 "(유럽이) 제국주의 세력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