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호 교수의 잘자고 잘살기]

## 저는 ‘양압기(陽壓機)’입니다. 1981년 호주에서 태어나 이제 만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영어 이름은 CPAP(Continuous Positive Airway Pressure), 우리말로는 ‘지속적양압호흡기’입니다. 제 지인들은 긴 이름 대신 '양압기'라고 즐겨 부릅니다.
한국에서 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하는 일 때문입니다. 저는 ‘공기를 불어넣는 일’을 합니다. 그냥 부는 게 아니고 일정한 압력으로 불어넣습니다.
이렇게 양압(positive pressure)으로 공기를 짜주면 좁아진 틈을 벌릴 수 있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곳에 바람을 불어 넣지도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 코를 통해 좁아진 기도(氣道)로 공기를 붑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잠이 들면 콧속과 혀 깊숙한 뒤쪽이 좁아지거나 막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자면 깊이 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좁은 틈으로 숨 쉬려고 애를 쓰는 상태다. 기도가 조금만 더 좁아져도 숨이 막히기 십상이다.
자주 코를 고는 사람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거나 거칠어 질 때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있다고 한다.
한국 40세에서 69세 사이 성인 남자의 4.5%, 여자의 3.2%가 이 병을 앓고 있다. 밤새 무호흡증이 반복되면, 몸에 산소가 부족해지고 번번이 뇌가 깨게 된다. 이렇다 보니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낮에 시시 때때로 졸음이 쏟아지게 된다.
또 수면무호흡증을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고혈압, 뇌졸중, 심근경색, 당뇨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양압기는 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의 건강과 활기찬 낮 생활을 확보해주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국내에서는 양압기를 이용한 무호흡증 치료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모든 비용을 환자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압기는 보통 150만~200만원에 팔린다.
평범한 직장인이 부담하기에 꽤 큰 비용이다. 이 때문인지 아직은 양압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국내에서는 많지 않다. 미국, 일본, 호주, 유럽 등에서는 양압기를 사용하면 의료보험 지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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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인구가 약 2.5배 많은 이웃 일본에서는 2010년 기준으로 약 17만명이 양압기의 도움을 받아 숙면을 취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양압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연간 1000~2000명 수준이다.
최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세계수면학회(Worldsleep2011)에 다녀왔다. ‘한국의 수면, 수면의학’이라는 연제 발표 뒤 예전부터 잘 알던 일본 교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 "2005년 처음 만났을 때, 한국에서 양압기 치료가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었다. 지금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다니 정말 놀랍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아니냐?"라는 질문에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양압기 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면 적잖은 비용이 들게 된다. 하지만 2000년 미국에서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사회간접비용(교통사고 등)이 159억달러에 달했다는 연구, 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는 경우 관련 의료비 지출이 치료한 경우의 2배 이상 소요된다는 보고 등 '비용-효과' 측면의 연구 결과도 많이 있다. 정책 결정시 이런 점이 비중 있게 고려되길 바라는 바이다.
국내에서도 머지 많은 장래에 양압기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돼 무호흡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