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의회, 예금과세 구제안 '거부'…향후 시나리오는

키프로스 의회, 예금과세 구제안 '거부'…향후 시나리오는

권다희 기자
2013.03.20 11:37

키프로스 의회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예금에 과세하는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을 부결했다. 이에 따라 키프로스 금융위기가 어떠한 파장을 몰고 올지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키프로스 의회는 1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10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받는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예금 과세 방안을 반대 36표, 기권 19표로 부결했다.

지난 주말 유로존 재무장관들과 키프로스 정부는 당초 키프로스 측이 요청한 170억 유로보다 작은 100억 유로를 키프로스에 지원하는 대신 키프로스 은행 예금에 부담금을 부과해 58억 유로를 조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예금 과세에 대한 반대가 안팎으로 거세졌다. 의회의 지지를 얻기가 힘들어지자 키프로스 정부는 예금에 부과하는 세율을 6.75~9.9%로 조정하고 잔액 2만 유로 이하 소액 예금주에 대해서는 면세하는 수정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의회는 전혀 수용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날 표결에서 의석 56석 중 찬성은 단 한 표도 없었다.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 경우 키프로스의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140%로 늘어나며, 부실이 심각한 키프로스 은행권에 외부 자금 수혈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키프로스는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한 키프로스에 가능한 향후 시나리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거론된다.

우선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체)이 소액 예금주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세율을 조정하는 새로운 과세안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이 의회의 우려와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음으론 100억 유로를 구제 금융으로 지원받는 대신 벌충하지 못한 60억 유로 가량의 부족액을 예금과세가 아닌 다른 방안으로 조달하는 방법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 싱크탱크 오픈 유럽은 우선 170억 유로의 차관을 매우 긴 만기와 낮은 금리로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니면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키프로스 은행에 직접 자금을 수혈하는 방법이 있다.

키프로스 국채 만기를 연장하는 채무조정을 실시하거나 차관을 제공한 공공 부문 채권단이 일부 손실을 감수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또는 러시아가 개입하는 방안이 있다. 러시아 정부는 대출 조건을 경감하거나 러시아 예금주들에 대한 세금 인상에 합의해 키프로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포름이 일부 키프로스 은행들에 자금을 수혈해주고 있다는 루머도 있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을 수혈 받지 못해 키프로스 은행권이 무너져 유럽 위기가 다시 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와 예금 과세라는 전례 없는 방안은 이번 주 초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구제금융안이 발표된 후 첫 거래일인 지난 18일 아시아 증시에서 일본 증시가 2%대 급락하고, 금값이 온스 당 1600달러를 돌파했으며 유로화가 올해 저점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키프로스는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0.2%에 불과한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시장이 키프로스 사태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는 지점은 직접적인 은행 예금에 대한 과세가 선례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받을 때 키프로스처럼 은행예금에 과세하는 방안이 채택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우려감이다.

데이비드 로센버그 글러스킨셰프 이코노미스트는 "은행예금 과세가 중요한 선례가 돼 파급효과가 사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운용사 핌코의 사우밀 패리크 핌코 이사는 19일(현지시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안 발표 후 유로 투자를 줄였으며 예금과세안 등 키프로스 구제금융안 조건이 유럽 회복세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4시간 동안 유로에 대한 자산배분을 줄였다"며 "이번 상황은 정책적 실수일 뿐 아니라 유로화가 완벽한 준비통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케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패리크는 "전반적인 자본 시스템은 신뢰에 기반하고 있고 은행에 예치한 돈은 무위험 자산"이라며 "(예금 과세가) 유럽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펌 스퀘어샌더스의 데이비드 와크 기업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는 "예금과세안이 철회된다고 해도 우리 고객들은 동요했고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라며 금융 서비스업의 천국이라는 키프로스의 평판이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 시장이 상대적으로 잠잠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다소 누그러뜨린다. 양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구제금융안이 발표된 후에도 아직 이탈리아 총선 후 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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