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건설연 안동 '도시홍수 파일럿 시험장'
강남역 6차선 도로·반포천 지하 인프라 재현
"AI 학습데이터 확보해 도시홍수 대응기술 고도화"

강남 사거리 왕복 6차선 도로를 그대로 재현한 도시홍수 파일럿 시험장. 시간당 45㎜로 물을 쏟아붓자 금세 인근 보도블록으로 물이 흘러넘쳤다. 성인 남성 허벅지 높이인 70㎝까지 차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7분이다.
무서운 점은 강우량이 늘어날수록 침수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는 것이다. 강우량을 4배 수준(175㎜/hr)으로 늘리면 동일한 침수 높이에 도달하는 시간은 4분의 1이 아닌 6분의 1(약 6분)로 줄어든다. 이처럼 도심은 일반 하천보다 물이 모이는 속도가 빠르고, 인구 밀도도 높아 홍수 발생시 위험도가 더 높다.

이같은 홍수 상황에서 맨홀 뚜껑은 도로 위 흉기로 변한다. 빗물이 역류하며 우수관 내부 수압이 급격히 상승해 맨홀 뚜껑이 튀어 오르는 것이다. 실제 우수관이 90% 막힌 상황을 가정해 실험한 결과 20㎏ 무게의 맨홀 뚜껑(직경 6.5m)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다 약 24초 만에 솟구쳤다. 이때 물기둥은 최대 70㎝까지 치솟을 수 있다.
2022년 8월 강남역 일대에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도로와 상가, 주택이 대규모 침수됐다. 전문가들은 도시홍수는 단순 강우량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빗물받이와 우수·하수관의 막힘, 지하 저류지 용량 부족 등 도시 인프라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경북 안동 하천실험센터에 서울 반포천 일대 인프라를 본뜬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을 구축하고 오는 21일부터 본격 실험에 돌입한다.
3000㎡ 규모의 실험장은 지하 우수저류시설·배수터널, 빗물펌프장 등 서울시 배수시스템을 그대로 본떠 도시 홍수의 전 과정을 실증할 수 있다. 최대 175㎜/hr의 초고강도 극한 강우 속 최고 1.6m 높이의 침수상황을 재현해 배수 형태에 따라 홍수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형태의 배수펌프가 더 효율적인지 등을 검증한다. 맨홀 뚜껑 역시 크기와 형태별로 안전성을 시험한다.
김종민 연구정책실 전임연구원은 "국내에는 도시홍수 인프라 관련 기준과 규정이 부족하다. 실규모의 실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영향"이라며 "특히 지하 인프라의 경우 바닥 침전물 때문에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데, 이곳에서 센서를 설치하는 등 모니터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향후 도시홍수 관련 기술 평가 및 검·인정 제도 표준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연은 2024년 AI 기반 하천홍수 예측 기술을 개발했다. 2023년 75명에 달했던 홍수 인명피해가 2024~2025년 총 8명 수준으로 급감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수 예보 지점을 기존 75곳에서 223곳으로 확대하고, 30~40분 걸리던 예측 시간을 1분 이내로 단축한 것이 주효했다. 홍수 특보 발령 건수가 88% 늘어나면서 주민들의 위험지역 접근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앞으로 시험장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도시홍수 예·경보 모델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박선규 건설연 원장은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 구축·운영은 기후 위기 시대 실효성 있는 도시 홍수 방어 정책 수립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실험을 통해 검증돼 데이터가 국가 홍수 대응정책과 제도 개선에 핵심적인 근거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