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보호시설과 학교에서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음에도 어엿한 대기업 직장인으로 성장한 한 성인 남성의 사연에 같은 직장인들이 응원을 넘어 존경을 표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지난 17일 '나도 엄마, 아빠가 있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쓴 A씨는 현재 포항 소재 대기업에 재직 중인 것으로 표시됐다.
A씨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님이랑 셋이 차 타고 마트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났고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큰 트레일러가 우리 차를 덮쳤고 나도 그 자리에서 죽을 뻔했는데 3일 만에 깨어나 불행히 혼자 살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어느 친인척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그렇게 보육 시설로 들어갔다. 시설도 두 번이나 옮기며 이 지역, 저 지역 떠돌아다녔다. 학창시절은 엄마, 아빠 없다는 이유로 왕따 당했고 남들 헌 옷 기증받아 입고 다니는 거 소문나서 거지라고 놀림 받는 바람에 친구 하나 없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방학 때마다 굶어 죽지 말라고 (학교에서) 두유랑 라면이 나오는데 박스로 나와서 학교랑 시설이랑 걸어서 3번씩 왕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는 시설에서 나오려고 기숙사가 있는 공고에 들어갔는데 그마저도 선생님, 일진들에 두들겨 맞는 바람에 자퇴하고 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물류창고 까대기부터 건설 현장 노가다, 밤에는 수산시장 얼음 배달, 노래방 카운터 등 별의별 일을 다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밤에는 잘 곳이 없어 시골 마을 노인정 옥상 파란색 물탱크 안에서 잠을 자곤 했다.
A씨는 "그러다 돈도 좀 모이고 하니, 모텔에서 달방 얻어 살았고 시간이 생기니 공부를 하고 싶더라.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달방 구석에서 공부 두 시간씩이라도 하고 잤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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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A씨는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용접·전기·가스 등 기능 자격증 취득해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A씨는 "면접 볼 때 '인생에서 제일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길래 '한 번도 안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울면서 하소연한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운이 좋게 뽑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맥주 한잔하며 구구절절 쓰니 참 다사다난했다. 엄마, 아빠 안 계시지만 엄마, 아빠 생신이 여름쯤이었던 것 같아 아이스크림 케이크 하나 사놨다. 내일 촛불 불려고 한다. 나 잘 컸다고, 잘살고 있다고, 잘 살아갈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얘기할 거다)"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그는 "또 연휴인데, 나한테는 연휴나 명절이 의미가 있나 싶다. 그래도 다들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해당 글에는 20일 오전 현재 1200여개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글을 본 직장인들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한 A씨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아기 때 너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정말 강하고 멋진 사람, 술 한잔 거하게 사주고 싶다" "환경을 극복한다는 게 가능하단 걸 보여준 상위 1%의 대단한 사람" "오랜만에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좋은 사람 만나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 이뤘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등 따뜻한 내용의 댓글이 쏟아졌다.
응원이 연일 계속되자 A씨도 지난 19일 댓글을 통해 "이틀 전 글을 쓸 때만 해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만 더 힘을 내고 버텼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썼는데, 너무 많은 분의 격려와 응원으로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23년간 혼자 살아오면서 듣지 못했던 따뜻한 말씀들로 얼마나 많이 울고 웃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많은 분들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