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명의 목사가 북한 공산군 비밀경찰에 끌려간다. 이 중 12명이 총살당하고 두 명의 목사가 살아남았다. 6.25 전쟁 직전 일어난 목사 집단처형사건에서 12명은 ‘순교자’로 규정되고, 살아남은 신 목사는 입을 굳게 다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신 목사가 진실과 양심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입을 열면서 사건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김은국씨가 쓴 장편소설 ‘순교자’를 읽은 게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는 순간,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20대 젊은 혈기가 허용할 수 있는 충격의 범위도 넘어섰던 것 같다. 신 목사의 진실은 목사가 사형을 당하면서 어린애처럼 울거나, 살려달라고 빈 내용이 골자다. 말하기 창피한 이 진실은 어쩌면 영원히 무덤까지 가져갔어야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소설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퍼지면 아는 신자들은 대개 “종교인도 인간이므로, 인간의 흠집과 결함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신을 믿는 것이지, 그 대리인을 믿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한다.
정치인과 종교인이 권력과 권위를 각각 가지게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힘으로 ‘있는 자’보다 ‘없는 자’의 측은함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단순히 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유로 ‘순교자’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어떤 가치’를 지켜왔다는 선입견이 작용하기에 이 용어는 특별해지는 셈이다.
종교인을 향한 우리의 인식은 늘 ‘특별한 존재’로 수용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찌질한 인생과 다르고, 뭔가 큰 뜻을 품고 있는 대의적 정신을 추구할 존재로 기대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지만, ‘신의 역할’을 대행해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굳게 믿는다.
교황은 방한 일정(14~18일)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해군기지가 건설 중인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을 만나고, 특히 세월호 참사 가족들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천주교도 교황 발언에 맞춰 교황의 그런 만남들을 주선한 주체가 자신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가는 곳마다 교황과 한국천주교와의 인연과 일체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모양새는 교황이 끌고 한국 천주교가 밀어주는 식이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을 먼저 만나고 싶다고 제안한 측도 교황청이다. 왜 세계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열광하는가. 이는 그가 ‘순교자’와 같은 행동을 몸소 실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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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방한과 관계없이 한국 천주교가 세월호 참사 가족 등 ‘약자’들에 대해 이전부터 꾸준히 지금보다 더 큰 목소리로 보듬고 애쓰는 ‘순교자’적 헌신과 사랑을 베풀 수는 없었을까. 교황의 광화문 시복식을 위해 세월호 가족과 ‘소란 자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앞서, 천주교는 단식 투쟁이 매일 벌어지는 가족들의 사연을 진지하게 들어줄 노력을 먼저 기울일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교황 방문에 맞춰 서점엔 유명 신부들이 쓴 ‘교황 어록’책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모두 교황이 던진 근사하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들이다. 우리는 서점에 불티나게 팔리는 책처럼 교황의 메시지를 듣기위해 그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어록을 뛰어넘는 그의 작은 실천들을 두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권위를 얻은 그가 그것을 어떻게 소중히 쓰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교황 일정에 대해 브리핑한 자리에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인 이정주 신부는 이런 얘기를 전했다. 어떤 기자가 전화와서 교황이 남미 방문에서 유리창이 큰 차를 요구했는데, 이것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려는 의미를 지닌 것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 홍보국장은 “이번 교황 방문을 맞아 너무 디테일한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소형차가 무엇이냐부터 소형차끼리 비교분석하는 기사들이 많은데, 교황님의 메시지에 더 주목해달라”며 “그날 그 기자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낮은 곳을 보려는 교황의 노력은 늘 디테일한 행동에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걸 뚫어보지 못하면 종교인의 실천은 늘 ‘메시지’에만 주목할뿐더러, 이론의 메아리에 갇혀 용기있는 행동에 눈치만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실천’보다 ‘어록’에 집착하는 한, 순교적 종교인을 만날 기회는 줄어들고 정치인과 친분을 과시하거나 골프치는 사제들을 만날 기회만 늘어날 뿐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이 주는 뼈저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