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들이) 앞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주문하면서도 돌아서면 비과세 및 세제 감면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정치인들의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만…"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들은 푸념의 말이다. 그는 "일을 제쳐두고 직접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이러한 법안은 이래서 안 됩니다'라고 완곡하게 거절하고 설득하기 바쁜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회에서 매년 200건이 넘는 감세 요구 입법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지난 2월 국가채무 논란이 한창일 때 정부 관계자들에게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이 있느냐. 균형재정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막상 뒤돌아서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감세 요구 입법안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한 달간 제출된 각종 세제 감면 입법안만 30개에 달할 정도다.
물론 모든 감면 입법안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균형발전과 출산장려, 투자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들도 많다.
정부도 이러한 의원들의 감면 요구를 묵살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무상급식 확대 등 정부 재정 지출 확대가 불가피한 선심성 공약들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극성을 부리고 있다.
무상급식 확대 주장도 취지는 좋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뒷받침해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상황이 좋지 않다. 그리스 등 남유럽발 재정적자 파동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더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일괄적인 무상 급식은 어렵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성 요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이번 위기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에 비해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건전성이 뛰어나 선제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여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외부 요인의 충격에 크게 좌우된다. 포퓰리즘적 요구들을 수용해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면 선제적 재정정책으로 대응할 여력은 사라지고 만다.
이 경우 한국 경제가 위기의 나락으로 빠져들 개연성이 충분하다.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한 이유다. 국가 경제와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치권의 자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