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력망 '질식'…'규제' 아닌 '이득'줘야 풀린다

수도권 전력망 '질식'…'규제' 아닌 '이득'줘야 풀린다

세종=조규희 기자
2026.01.09 06:30

[일렉코노미]한국의 딜레마: 규제와 인프라의 전쟁③

[편집자주] AI가 세계 경제의 기술 패권을 재편하고 탄소중립 전환이 산업과 생활 전반을 뒤흔든다. 이 두 흐름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전기(Electricity)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전력 수요 급증 속 공급을 제약하는 '역설'이 향후 세계 경제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일렉코노미(Eleconomy)'는 미래 경제를 좌우할 이 전환의 본질을 짚고 한국이 직면한 기술·에너지·인프라의 세 가지 도전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며 AI와 탄소중립 시대에 요구되는 '아름다운 에너지 믹스'와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문용 대전소방본부장이 13일 서구 탄방동에 위치한 KT C 대전DC를 방문해 리튬이온 배터리 등 화재위험 설비를 확인하고, 자동소화설비의 유지관리와 방화구획 상태를 점검하며 관계자에게 초기 대응력 강화를 당부했다. (대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10.13/사진=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문용 대전소방본부장이 13일 서구 탄방동에 위치한 KT C 대전DC를 방문해 리튬이온 배터리 등 화재위험 설비를 확인하고, 자동소화설비의 유지관리와 방화구획 상태를 점검하며 관계자에게 초기 대응력 강화를 당부했다. (대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10.13/사진=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쏠려도 너무 쏠려 있다. 현재도, 미래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 이야기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국내 데이터센터 161개 가운데 101개가 서울·경기·인천에 위치한다. 미래 수요도 여전하다. 향후 전력공급이 필요하다고 신청한 140여건중 81곳이 수도권을 지목했다. 전체 수요의 60%가 이미 포화 상태인 수도권에 몰린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기업, 인재, 인프라가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수도권의 유인력은 강력하다.

산업적 특성 탓이다. 금융·게임·AI(인공지능) 서비스는 네트워크 지연에 극도로 민감하다. 고객사와 본사가 밀집한 수도권은 포기하기 힘든 최우선 선택지다.

현실적 계산도 작용한다. 유지보수 업체와 IT·보안 전문 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장애 대응 속도가 빠르고 비용도 절감된다. 전력·통신 등 기존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반면 지방은 리스크가 크다.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문제와 인허가 난관에 부딪힌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수도권 집중'은 철저히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다.

문제는 쏠림의 비용이다. 우려 단계를 넘어섰다. △전력망 부담과 계통 리스크 확대 △지역 간 전력 불균형 심화 △부동산·환경 갈등 △국가 차원의 시스템 리스크 등 비용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가 단적인 예다. 카카오와 네이버 일부 서비스가 멈췄다. 초밀집된 데이터센터와 단일 사업자 의존도는 재난 시 사회 전체 마비로 이어진다.

전력망은 이미 한계다. 최근 수도권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전력 접속이 지연되거나 조건부 승인을 받기 일쑤다. 계통 용량 초과로 설비 보강까지 수년을 대기해야 한다.

정부 대책은 '사후약방문'에 가깝다. 실제 정부와 전력 당국의 송·변전 설비 확충 계획을 보면 수도권 데이터센터 수요 대응을 명시적으로 전제로 한 계통 보강 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선제적 대비 없는 '추격형 투자'는 구조적 부담을 키운다. 이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나 공공 재정 투입으로 귀결된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 버지니아주 북부는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로 성장했지만 전력망 과부하와 주민 전기요금 급등이라는 청구서를 받았다. 서비스 장애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가 비용을 치르는 구조다.

그렇다면 수도권 입지 제한이 답일까. 이미 수도권 입지 제한은 '풍선효과'만 낳고 있다. 한전 신청 현황을 보면 수도권 81곳에 이어 대전·충남이 18곳이다. 강원·충북(각 6곳), 호남·영남권과 대비된다. 수도권 인접지로 입지만 옮길 뿐, 진정한 분산 효과는 미미하다.

해외 이탈 우려도 크다. 규제 일변도는 기업을 해외로 내몰 수 있다. 데이터 주권 상실은 물론 투자와 고용 기회까지 잃게 된다.

해외 사례를 보자. 미국은 입지 규제 대신 주별 요금과 세제 혜택으로 시장 원리에 맡겼다.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난 대응 관점에서 오사카·규슈·홋카이도 등으로 분산을 유도하며 이중화 체계를 구축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낮은 기온, 풍부한 재생에너지, 안정적인 전력망을 무기로 '에너지 기반 유치' 전략을 구사한다.

핵심은 강제가 아닌 유인이다. 기업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규제의 장벽만 높이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규제가 없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손해를 감수하고 지방으로 갈 기업은 없다. 데이터센터 분산은 엄포나 행정 명령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시그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방행이 '애국'이 아닌 확실한 '이득'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파격적인 전기요금 체계, 과감한 세제 혜택, 신속한 인허가 처리 같은 실질적 당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송전망 제약 해소와 통신망 이중화 등 인프라 신뢰성을 중앙 정부 차원에서 보증해야 한다.

결국 비용, 리스크, 신뢰성을 따져본 기업이 스스로 지방을 선택하도록 판을 짜는 것이 관건이다. 지방에 짓는 데이터센터가 수도권보다 더 빠르고, 경제적이며, 안전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입지 제한이 아니라 유인 설계"라며 "데이터센터 분산은 행정 명령이 아니라 비용, 리스크, 신뢰성까지 고려한 기업의 합리적 선택일 때 작동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쏠림 문제의 해법은 규제가 아니라 전력과 산업 정책을 결합한 정교한 설계에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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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희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조규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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