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코노미]<하편>에너지노믹스 리셋: 공급과 분산의 길④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약 70가구 120여명이 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인근에 세종대왕릉이 있다는 것 외엔 특별할 게 없던 이 곳에 최근 전국적 이목이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장, 국무총리, 장관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다.
전국 농촌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방문도 줄을 잇는다. 마을공동체가 태양광 발전으로 수익을 내고 주민과 나누는 '햇빛소득마을'의 모범 사례로 꼽힌 덕분이다.
지난달 10일 찾은 구양리 새마을식당. 점심 준비가 한창이었다. 메뉴는 동태찌개와 콩나물무침, 각종 나물.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 밥상은 '무료'다. 마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민의 점심을 책임진다.
마을주민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구양리 행복버스'도 무료다. 매일 오전 9시30분에 운행하는 행복버스는 여주 시내 관공서와 병원을 오간다.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의 발이다. 대중교통이 부족한 여느 농촌과 달리 주민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비결은 '태양광'이다. 구양리는 마을회관, 창고, 체육시설, 주차장 등 마을의 공동자산을 활용해 1000kW(킬로와트)급 태양광 발전시설 6기를 올렸다. 생산한 전기는 한국전력에 판다. 일조량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출 원리금과 관리비를 뺀 순이익만 월평균 1000만 원. 이 돈이 무료 급식과 행복버스의 재원이다.
주민들이 지분 참여를 통해 태양광 수익으로 배당을 받는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구양리가 기존 사업과 다른 점은 수익을 개인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공유한다는 것이다. 개인 지분은 없고 모두 마을 공동자산으로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전주영 구양리 이장은 "태양광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하게 되면 지분투자를 한 주민만 수익을 갖게 된다"며 "대부분 농촌이 고령화 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금이 부족한 어르신들은 사업에서 배제되고 갈등만 깊어진다"고 지적했다.

구양리의 태양광 사업 시작은 '공동체 회복'의 절박함이었다. 30년 농민운동가 출신인 전 이장은 기후위기를 직감했다. 수입 개방이나 고령화, 인구 소멸 수준이 아니었다. 농민의 삶터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다.
전 이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농촌 지역에 태양광이 대거 들어올 수밖에 없다"며 "농촌엔 자본이 없는데 외부 자본이 들어와 태양광을 설치하고 나면 사업자들이 농촌 땅을 잠식하고 이익은 그 사람들이 다 가져가게 된다. 농민들은 결국 농지에서 밀려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PICK!
태양광 사업 이후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다. 하루에 한 번씩 식당에 모여 같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을의 결속력은 올라간다. 식당과 버스 운영을 하고도 여유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 티켓도 구매한다. 전 이장은 "밥도 같이 먹고 여행도 같이가고 모두가 같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며 "처음에 사업을 반대했던 주민들도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구양리는 2021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의 '마을주도 태양광 지원사업(햇빛두레 발전소)'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사업을 추진했다.
산업부는 시범사업 마을에 △소형태양광 가격고정계약 △공급인증서(REC) 우대 가중치부여 △장기·저리 금융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총사업비의 90%까지 장기·저리 대출이 가능했지만 보증이나 직접대출이 아닌 이차보전 방식이었다. 결국 금융권 대출을 받아야 했는데 담보가 부족한 구양리로선 금융기관을 찾기 쉽지 않았다. 은행 문턱을 넘으려면 담보가 필요했는데 마을 자산만으론 역부족이었다.
다행히도 구양리는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 필요한 용수관로가 마을을 지나며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돈으로 부지를 추가 매입하고 태양광 시설까지 담보로 잡혔다. 가까스로 자금 숨통이 트였다.
자부담 2억3000만원에 융자 14억4000만원을 더해 총 사업비는 16억7000만원이 들었다. 구양리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함께 선정된 6개 시범마을 중 5곳은 자금난에 사업을 접었다.
구양리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선 초기 금융부담을 완화하고 수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양리 태양광 사업을 같이 주도했던 최재관 햇빛배당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앞으로 정책적으로 농촌 기본소득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데 세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 고정계약 등으로 정부가 태양광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세금을 덜 들이면서 농촌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전국에 구양리와 같은 '햇빛소득마을' 2500곳 지정을 목표로 하는 '햇빛소득마을 전국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용지 활용과 금융지원으로 제2의 구양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농촌 공동체 회복. 구양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선도 모델이다. 최 대표는 "향후 3년 안에 마을의 태양광 발전용량을 5MW(메가와트)로 늘릴 것"이라며 "전국에서 와서 배울 수 있도록 교육관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양리, '해가 뜨는 곳'(九陽, 구양)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