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의 '가격 통제'와 '물량 폭탄'…에너지 안보 승부수 띄운다

29년만의 '가격 통제'와 '물량 폭탄'…에너지 안보 승부수 띄운다

조규희 기자
2026.03.15 14:37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 주말을 맞은 15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25분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842.1원으로 전날보다 3.2원 하락했다. 같은 시각 경유 가격은 1843.5원으로 4.5원 내렸다. /사진=뉴스1.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 주말을 맞은 15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25분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842.1원으로 전날보다 3.2원 하락했다. 같은 시각 경유 가격은 1843.5원으로 4.5원 내렸다. /사진=뉴스1.

국내 석유 시장이 거대한 정책적 실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해 가격의 천장을 강제로 누르는 동시에 역대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과 해외 도입선 확보라는 '물량 공세'로 하방 압력을 지탱하고 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휘두르는 가장 강력한 정부의 칼날이다.

지난 13일 0시를 기해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순한 가격 억제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보통휘발유 리터(ℓ)당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이라는 수치는 국제 유가 급등기에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정부가 직접 규정한 것이다.

과거 유류세 인하가 정유사와 주유소의 마진 체계 속에서 소비자 체감까지 시차가 발생했던 것과 달리 이번 조치는 출고가 자체를 직접 규제함으로써 즉각적인 가격 하락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시행 직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하루 만에 ℓ당 20원 가까이 급락하며 1800원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정부가 가격의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강제로 종료시킨 셈이다.

다만 가격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격 통제는 반드시 '품귀 현상'과 '암시장'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국제에너지기구(IEA)와의 공조를 통해 결정한 2246만 배럴의 전략 비축유 방출은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공급의 방패'로 볼 수 있다.

현재 비축기지에서 정유사로의 물리적 인도를 앞둔 이 물량은 국내 하루 소비량의 약 8일 치에 달한다. 중동 전쟁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실질적인 탄약이 시장에 보급되는 것. 전문가들은 이번 방출이 단순한 수량적 의미를 넘어 정유사들에게 안정적인 원료 공급 확신을 줌으로써 정부가 설정한 최고가격제에 순응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약속받은 600만 배럴의 원유 공급 또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우회로인 푸자이라 항만을 통한 400만 배럴 직도입은 에너지 안보의 질적 변화를 상징한다.

국내에 보관 중인 UAE 소유 공동비축유 200만 배럴에 대한 우선구매권(First Right) 행사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이동 시차 제로'의 즉각적인 수급 안정 효과를 발휘한다.

가격을 누르는 정책이 '공격'이라면 비축유 방출과 해외 도입선 다변화는 시장의 붕괴를 막는 '수비'다. 이 투트랙 전략이 맞물리면서 국제 유가 상승세 속에서도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은 역설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과제는 남아 있다. 비축유는 언젠가 소진되며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 '빌린 자산'이다. 현재의 대규모 방출 이후 유가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더 비싼 가격으로 비축유를 채워 넣어야 하는 재정적 부담과 미래의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2주 단위로 재산정되는 최고가격제가 국제 유가의 변동성을 제때 반영하지 못할 경우 정유사의 수익성 악화가 공급망의 실핏줄인 자영 주유소의 폐업으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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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희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조규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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