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적 긴장과 개성 강한 캐릭터로 필모그래피를 구축해 온 배우 구교환이, 이번에는 진한 멜로 영화로 돌아왔다. 그가 주연한 영화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현실 앞에서 어긋난 연인이 10년 만에 다시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중국 영화 '먼훗날 우리'(2018)를 리메이크했다.
구교환이 연기한 은호는 게임 개발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지만 현실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고, 그 과정에서 미숙한 선택과 좌절을 반복하는 인물이다. 특히 원작보다 한층 더 따뜻하고 호감 가는 결로 그려졌다.
"은호가 원작보다 더 괜찮아 보인 건 김도영 감독님의 디렉팅 덕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영화보다 감독님의 말을 더 열심히 들으려고 했어요. 절반은 문가영 배우의 연기였죠. 엔딩에서 강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그렇게 울 줄은 몰랐거든요. 문가영의 얼굴을 보니까 너무 서럽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겸손이 아니라 감독님과 문가영 배우 덕분이었어요."
구교환은 특히 김도영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때문에 그에게 '만약에 우리'는 두 겹의 관계 속에서 완성한 작업이었다. 화면 안에서는 문가영과 멜로를 만들었고, 그 바깥에서는 김도영 감독과 멜로를 쌓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감독과 배우 사이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김도영 감독님은 이 작품을 하기 전부터 배우로서도 굉장히 존경하던 선배였어요. 연출자로서도 제가 원하는 모습의 감독님이었고, 이 분이라면 잘 만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마침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제가 준비하고 있던 연출작이 있었는데, 감독님께 꼭 맡기고 싶은 역할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역으로 감독님을 배우로 섭외했죠. 좋은 품앗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은호의 시간을 교차해 보여준다. 과거의 은호가 지질하고 불안정한 청춘에 가깝다면, 현재의 은호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다닐 만큼 사회적으로는 자리를 잡은 인물이다. 외형과 조건만 놓고 보면 분명한 변화가 있지만, 삶의 무게가 쌓이면서 태도와 온도가 달라졌을 뿐 인물의 본질은 이어져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10년이 지나도 은호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정원(문가영)이 기억하는 예전 모습과 장난스러움이 지금의 은호 안에도 남아 있다고 보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목이자 엔딩에서 반복되는 대사인 "만약에 우리"는 구교환에게도 특별한 신으로 남았다. 그는 이 대사가 현실적인 대화라기보다 시나 가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가지 감정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관객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이길 바랐다. 담백하게 처리하려던 계획은 현장에서 무너졌지만, 그 실패가 오히려 기분 좋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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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화에서 '만약에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진 않잖아요. 그래서 시 같고, 가사 같은 대사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한 가지 감정으로 뱉으려고 하진 않았어요. 관객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담백하게 해보려 했는데 여지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기분 좋게 무너진 계획이었죠."
과거 시점의 은호는 꿈이 번번이 좌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잘 풀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미숙한 선택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도 한다. 구교환은 그런 은호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동시에 그 모습에서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배우이자 연출자로 활동해 온 그는 완성하지 못한 시나리오와 실패한 시도들 역시 결국은 다음 작업으로 이어진 경험을 은호의 감정에 겹쳐 보았다.
"은호가 무너져갈 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행동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저도 매번 실패하면서 살거든요. 완성되지 못한 시나리오들이 많은데, 결국엔 그 장면들을 다시 꺼내 쓰게 돼요. 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든 꺼낼 수 있구나 느꼈어요."

영화가 모든 서사를 설명하지 않고 여백을 남긴 선택에 대해서도 구교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와 정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관객 각자의 이야기이길 바랐다는 해석이다. 그는 "모든 서사를 다 말해버리면 모두의 은호와 정원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처음과 끝만 있고, 그 사이의 빈칸에 관객 각자의 은호와 정원을 넣는 거다. 그래서 '만약에 나라면'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이 작품의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잘 이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말이라는 해석이다. 취업에 성공하고 아버지가 된 은호의 현재 역시 하나의 완성으로 바라봤다. 그는 이 영화를 '잘 이별하는 법을 보여주는 청춘 영화'로 정의했다.
"저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잘 이별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죠. 아이러니하지만요. 은호가 취업에 성공한 것도, 아버지가 된 것도 모두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문가영과의 호흡에 대해 구교환은 엔진이라는 표현을 썼다. 둘 다 장면을 대하는 뜨거움과 집중의 온도가 같았다는 의미다. 기술보다 감정의 진심이 먼저였고, 서로를 진짜 은호와 정원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매 테이크를 처음처럼 연기하는 문가영의 태도에 깊은 존경을 표했다.
"저는 안에 있는 엔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가영 배우와 저는 같은 RPM을 가지고 있었어요. 장면을 대하는 뜨거움이 잘 맞았죠. 서로를 진짜 은호, 진짜 정원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문가영 배우가 테이크를 여러 번 가도 매번 처음처럼 연기하는 걸 보고 크게 리스펙했어요. 다음에 다른 장르로 또 만나자고도 이야기했어요."

구교환은 현재 '충무로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작품마다 인물의 결을 놓치지 않으며 관객에게 신뢰를 쌓아온 결과다. 즉흥성과 밀도를 겸비한 연기로 '천재형 배우'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하지만 구교환은 자신의 연기를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제 재능은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장캐'예요. 끊임없이 장면을 시뮬레이션하고, 직업이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해요. 가끔 멍때릴 때도 찍을 장면 생각할 정도로요. 끊임없이 장면을 시뮬레이션하고 생각해요. 드리블 잘하는 선수들이 드리블 연습을 안 하겠어요?(웃음) 저도 제 방식으로 훈련하고 노력해요."
구교환이 그리는 배우의 모습은 화려한 수식어와는 다른 방향에 있다. 대세 배우나 천재형 배우라는 평가보다, 그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관객과의 친밀한 거리다. 연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사람들 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붙잡게 만드는 이유 역시 그 솔직한 자기 인식에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주변 사람처럼 남고 싶어요. 멀리 있는 배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걸 계속 추구하고 있어요. 작품 리딩할 때도 매번 '당신의 주변인입니다'라고 저를 소개해요. 그렇게 인사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저는 대단히 내향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표현하고 나를 외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요.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하고 있구나 싶어요."
'만약에 우리'는 오는 3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