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는 판타지물의 메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영감의 원천이다. 왜소하고 소심한, 왕따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신화 속 신들이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고, 인간들은 그들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면? 작가 릭 라이어던의 판타지 소설 ‘퍼시 잭슨’은 이런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출판돼 인기를 모은 라이어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퍼시 잭슨’ 시리즈는 평범한 소년이 반인반신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며 신화 속 영웅들의 시련과 고난을 그대로 재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3편에 걸쳐 그려 냈다.
유명 원작과 극장판에 이어 선보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은 공개 전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출항했다. 극장판보다 등장인물들의 연령대를 낮추고 다양한 인종들로 새로 꾸린 출연진, 원작에 좀 더 충실한 스토리 등으로 시즌 1은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얻었다. 2년만에 돌아온 시즌2는 현재 3화까지 공개되며 황금양털을 찾아 떠나는 퍼시와 친구들의 여정 초반을 보여준다.
현실 속으로 내려온 그리스 신화 속 익숙한 신들은 경쟁하고 질투하고 성급하면서 무책임한 단점을 여전히 갖고있다. 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반인반신 아이들이 보호받고 훈련하는 캠프에서는 자식들을 방임하는 부모에 대한 반감과 선민의식, 정체성 혼란 등 아이들의 다양한 고뇌가 그려진다. 고대의 신들을 현대 사회의 권력자, 부모, 제도로 치환돼 전지전능하지만 모범적이지 않고 권력을 탐하거난 무분별하고 부도덕한, 완벽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이들의 피를 물려받아 고난을 거듭하며 영웅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은 신과 달리 성장하고 화합하며, 부모의 실패와 부족함을 넘어서는 존재로 그려진다.

시리즈로 재탄생한 ‘퍼시 잭슨’은 원작의 정서를 기존 작품에 비해 충실하게 담았다. 캠프 하프블러드의 분위기, 그리스 건축적 세트,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유대를 세심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원작 팬들의 환영을 받을만 하다. 완성도 높은 세트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신화 속 모험과 스케일을 현실감 있게 구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황금양털을 둘러싼 여정은 원작에서도 비교적 직선적인 서사를 따르지만, 여러편의 시리즈라는 특성 상 기존 극장판에 비해 속도감이나 긴장감은 다소 부족하다. 주요 사건들은 차분히 배치돼 있고, 캐릭터 간 갈등 역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봉합된다. 모험담 특유의 급박함이나 위기감보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미션 클리어’의 모범적인 예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극장판 못지 않은 스케일과 화려한 비주얼은 공들인 시리즈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무책임한 부모인 신들에게서 태어난 ‘데미갓’(하프블러드) 아이들은 신들의 방임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한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타고난 능력과 성격이 각각 다른 것도 흥미롭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 퍼시와 그의 친구 아나베스, 급기야 신들에게 반기를 든 루크 등 주요 인물들이 그려가는 내적 갈등과 성장 서사가 신화 속 영웅담의 모험과 함께 그려진다.
독자들의 PICK!
신들의 묘사 역시 여전히 흥미롭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을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은 권력에 집착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자식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시즌2에서도 유효한 주제의식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탓에 신선함은 다소 옅어졌다. 작품 속 신들을 절대악이나 선의 존재가 아닌,, 결함 많은 부모이자 기성세대를 상징한다.
황금양털을 찾아 탈리아의 나무를 구하려는 퍼시와 친구들의 모험을 그릴 시즌2는 이제 닻을 올렸다. 황금양털을 가져올 캠프의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전차 신으로 서막을 연 시즌2는 더욱 화려하고 강렬한 여정을 예고한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