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구교환은 출세작 '반도'(2020)를 비롯해 주로 장르물에서 활약해 왔다. 생존극의 긴장, 탈주극의 광기, 희극적 엉뚱함까지. 그 안에서 인물을 비틀기도 하고 결이 어긋나는 독특한 방식으로 탁월한 얼굴을 보여줬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언제나 개성 강한 캐릭터와 함께였다.
그래서 영화 '만약에 우리'는 조금 낯선 선택처럼 보였다. 본격 멜로, 그것도 첫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정면으로 다루는 로맨스물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장르다. 때문에 '장르물의 귀재'라 불리는 구교환에게는 다소 물음표처럼 존재한 영역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지닌 본연의 결을 가장 매력적이고 정직하게 드러낸 선택이 됐다. 시사회에서 "알고보면 멜로 장인"이라고 한 말은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만약에 우리'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은호는 특별하지 않은 청춘이다. 게임 개발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번번이 좌절되고, 사랑 앞에서도 완벽하지 못하다. 이 인물은 극적인 사건으로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잘해주고 싶지만 여유 없는 마음, 응원에 오히려 짜증을 내는 순간,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 같은 사소한 균열로 서사를 쌓아간다. 구교환은 이 미세한 흔들림을 과장 없이 붙잡는다.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주저하는 눈빛과 말끝의 망설임으로 인물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 멜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구교환이 은호를 멋진 남자로 만들지 않아서다. 그는 사랑에 서툰 남자를 연기한다. 옥탑방 창문을 활짝 열어주던 다정함이 반지하 방에서 커튼을 치는 무심함으로 바뀌는 과정, 선풍기 방향이 바뀌는 순간 같은 디테일은 구교환의 생활 연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은호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뒤늦게 후회하는 인물이다. 그 후회의 얼굴이 이 영화의 감정선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특히 인상적인 건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보여주는 구교환의 온도다. 과거의 은호가 불안과 열기로 가득 찬 청춘이라면, 현재의 은호는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감정은 여전히 미완인 인물이다. 구교환은 외형의 변화보다 태도의 변화를 택한다. 장난기 어린 말투는 남아 있지만, 감정의 속도는 한 박자 늦춰져 있다.
구교환의 멜로 연기가 돋보이는 지점은 감정의 절정에서도 힘을 빼는 선택에 있다. 영화의 제목이자 반복되는 대사인 '만약에 우리'는 자칫 과잉의 감정으로 흐를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고백이나 호소가 아닌, 지나간 선택을 되짚는 질문처럼 던진다. 그래서 이 장면은 울부짖는 사랑이 아니라 잘 이별한 사랑의 얼굴로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담백함이 관객의 감정을 더 깊이 건드린다.

'만약에 우리'를 통해 확인되는 건 단순히 '구교환도 멜로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멜로에서도 자신만의 결을 유지한다.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인물을 미화하지 않으며, 실패한 사랑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이 선택은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장르보다 감정과 인물에 충실한 연기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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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 이후의 구교환이 더 궁금해진다. 멜로도 잘하는 배우라는 호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선택지를 열어줬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의외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구교환은 여전히 특별한 배우다. 다만 이제 그 특별함은 장르의 외곽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의 중심에서도 충분히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