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인파 숨죽인 광화문의 밤...'BTS 2.0'의 웅장한 서막
1시간 동안 펼쳐진 공연, 총 12곡 소화
"불안과 방황까지 스스럼없이 담아내는 것이 목표"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광화문이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년 9개월 만의 컴백 무대로 이곳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상이 마주 선 한국의 중심, 그 한가운데 설치된 무대는 이번 공연의 상징성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한국이 낳은 가장 글로벌한 아티스트가 가장 한국적인 공간에서 귀환을 알린다는 것. 방탄소년단은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자신들의 뿌리와 현재, 그리고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미래의 방향성을 서사시처럼 펼쳐 보였다.
지난 21일 열린 방탄소년단의 정규 5집 'ARIRANG'(아리랑) 컴백 쇼 'BTS 컴백 라이브: ARIRANG' 현장에는 무정차 통과하는 지하철을 뚫고 공항 수준의 엄격한 금속탐지기 검색을 거쳐 코어존에 진입한 약 4만 명의 인파가 함께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된 가운데, 글로벌 팝스타의 세련된 플로우에 한국적 배경을 입힌 이들의 무대는 새로운 챕터인 'BTS 2.0'이 품은 청사진을 보여줬다.
1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은 방탄소년단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긴 공백 끝에 어떤 고민을 거쳐,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서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정규 5집의 수록곡 8곡과 'Butter'(버터), 'MIC Drop'(마이크 드롭), 'Dynamite'(다이너마이트) 같은 히트곡들을 배치한 세트리스트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팀의 뿌리와 현재형의 정체성을 겹쳐 보이게 했다.

무대의 구조부터가 그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액자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큐브형 무대는 광화문을 정면으로 끌어안았고, 세 겹의 LED는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응용한 이미지로 공간의 분위기를 시시각각 바꿨다. 광화문은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에서 꺼내 든 질문을 받아내는 캔버스가 됐다.
그 시작점이 된 첫 곡은 정규 5집의 1번 트랙 'Body to Body'(보디 투 보디)였다. 한국 민요의 선율을 품은 정규 5집의 1번 트랙 'Body to Body'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한국적인 색채로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곡이다. 멤버들은 이 곡에 맞춰 무대 중앙에 일렬로 등장해 단숨에 시선을 압도했다.
이어진 무대에서 방탄소년단은 맹렬한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를 증명했다. 'Hooligan'(훌리건)에서 맏형 진은 복면을 뒤집어쓴 파격적인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수십 명의 댄서들 사이로 제이홉과 RM의 타격감 있는 래핑, 정국의 부드러운 음색이 쉴 틈 없이 교차했다. 이어지는 '2.0' 무대에 이르기까지 멤버들은 격렬한 안무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뽐내며 "불을 붙여 brand new"라는 가사처럼 자신들의 건재함을 세상에 알렸다.
이날 현장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존재했다. 리더 RM이 공연 전 리허설 도중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럼에도 무대에 오른 RM은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묵묵히 마이크를 쥐었다. 단단하고 유려한 춤선을 소화하는 여섯 멤버 곁에서 RM은 특유의 묵직한 래핑과 라이브로 앙상블을 더욱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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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을 고르며 마이크를 잡은 멤버들은 세계 최정상에 선 그룹이 겪어야 했던 고뇌를 털어놓았다. 진과 지민이 벅찬 감동을 전한 데 이어, 제이홉은 "우리가 잊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고백했다. 슈가는 "멈춰야 했던 시간 동안 유지해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덧붙였고, RM은 "불안이나 방황까지 스스럼없이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며 이번 앨범이 지닌 의미를 되짚었다.
진솔한 고백 직후 광장은 곧바로 경쾌한 축제장으로 반전됐다. 메가 히트곡 'Butter'의 익숙한 전주가 흐르자 분위기는 단숨에 달아올랐다. 무대 곳곳을 활보하며 관객과 눈을 맞추던 멤버들은 의자에 앉은 RM의 곁을 둥글게 둘러싸 장난을 치며 완전체 특유의 끈끈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 열기는 곧장 'MIC Drop'으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이 '힙합 그룹'을 표방하며 출발했던 팀이라는 사실을 환기한 선택이었다. 격렬한 안무와 라이브에 수만 명의 관객이 뜨거운 떼창으로 호응했고, 마지막 순간 슈가가 곡 제목처럼 보란 듯이 마이크를 떨어뜨리자 현장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끓어오르는 열기를 잠시 식히며 멤버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팬들과 교감했다. 뷔는 "이렇게 단체로 돌아왔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감격했고, 지민은 쌀쌀한 날씨를 걱정하며 "여러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우리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국 역시 "컴백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여러분 앞에 서니까 그저 좋다"고 이야기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규 5집 이야기로 넘어갔다. RM은 "LA에서 두 달 동안 치열하게 작업하며 '우리다운 새로운 음악'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다시 뭉칠지 솔직하게 담고자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다"고 밝혔고, 슈가는 "이전보다 성숙한 일곱 명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이홉은 "다양한 곡들 안에 잊히진 않을까 했던 우리의 수많은 고민이 담겼다"고 덧붙였다.
팬들과의 교감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이들은 정규 5집 수록곡 'Aliens'(에일리언스)와 'FYA' 무대를 연이어 선보였다. 정국이 "긴장되면서도 새롭고 오랜만이라 짜릿하다"고 소감을 밝힐 만큼 무대 위 멤버들의 표정에는 벅찬 희열이 가득했다. 이내 뷔의 묵직한 소개와 함께 이번 공연의 핵심인 타이틀곡 'SWIM'(스윔)의 무대가 펼쳐졌다. 멤버들은 핏대를 세우는 강렬한 군무 대신 물결을 타듯 유려하고 정교한 안무, 그리고 곡 메시지를 담담하게 밀어 올리는 진중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SWIM' 뒤를 이은 'Like Animals'(라이크 애니멀스)와 'Normal'(노멀)은 퍼포먼스보다 보컬과 감성에 무게를 두며 앨범 후반부의 서정적인 결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노래가 진짜 좋다"며 자화자찬하던 멤버들은 각자의 최애곡을 꼽기도 했다. 정국은 'FIRE'(파이어), 진은 'Into the Sun'(인투 더 선), 지민은 'They Don't Know 'Bout Us'(데이 돈트 노우 어바웃 어스), 슈가는 'Body to Body', RM은 'Like Animals', 제이홉은 'Normal', 뷔는 'Aliens'(에일리언스)를 꼽으며 신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오늘 내 꿈에도 나와달라"는 뷔의 다정한 당부와 "오늘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RM의 단단한 확신 속에서 엔딩곡 'Dynamite'(다이너마이트)가 울려 퍼졌다. 멤버들의 익살스러운 제스처와 경쾌한 스텝이 광화문의 밤을 환하게 밝혔다. 하지만 일곱 멤버는 아쉬움에 쉽게 무대를 떠나지 못했다. 뒤돌아 들어가던 멤버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RM이 "소우주 한잔하자"며 앙코르를 이끌었고, 결국 앙코르곡 '소우주'가 광장을 채우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60분간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방탄소년단은 정규 5집 수록곡 8곡과 역대 히트곡들을 촘촘하게 엮어냈다. 힙합 그룹으로 출발했던 과거의 원형, 글로벌 팝스타로 정점에 선 현재, 그리고 '아리랑'이라는 거대한 뿌리 아래 다시 하나로 묶인 정체성의 자각이 완벽한 기승전결을 이뤘다.
긴 공백기를 지나 대중 앞에 선 방탄소년단은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새로운 돛을 올린 채, 거센 파도처럼 흔들리는 순간에도 삶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자신들의 현재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