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흥행에도 11회 즉위식 장면으로 거센 역풍
폐기 요청 국회 국민동의 청원 나흘 만에 5만 명 달성

만세(萬歲)를 외치려다 천세(千歲)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단 한 편의 미니시리즈도 시청률 TOP 10에 올리지 못하며 뼈아픈 흉작의 해를 보냈던 MBC에게 '21세기 대군부인'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구원투수였다. 첫 방송 시청률 7.8%로 시작해 13.8%로 막을 내리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드라마 왕국'의 부활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리는 듯했다. 그러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일까. 극 후반부 불거진 뼈아픈 고증 오류는 이 찬란했던 '효자'를 단숨에 '불효자'로 전락시켰다.
'21세기 대군부인'의 방영 중단 및 미디어 플랫폼 내 콘텐츠 폐기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단 나흘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드라마 한 편의 특정 장면이 시청자 항의 차원을 지나 국회 심사 테이블까지 오르게 된 매우 이례적인 사태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아이유와 변우석이라는 거물급 캐스팅, 입헌군주제라는 흥미로운 가상 설정 등으로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하지만 11회 즉위식 장면 하나가 그 모든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
문제의 장면은 이안대군(변우석) 즉위식에서 신하들이 외친 "천세 천세 천천세"와 머리에 쓴 구류면류관이다. 역사적으로 황제국만이 '만세'와 '12류면류관'을 취할 수 있었고, 제후국은 그보다 급이 낮은 '천세'와 '구류면류관'을 사용했다. 즉,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가상 국가의 왕을 스스로 중국의 제후국 수준으로 격하해 버린 셈이다.
이 논란이 단순한 사극 고증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작품 설정 때문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현대 대한민국 안에 입헌군주제가 존속한다는 가상 세계관을 내세운 작품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제작진의 책임은 더 커진다. 실제 역사를 그대로 다루지 않는 작품일수록 시청자가 받아들일 상징과 의례의 의미를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해서다. 허구라는 이유로 고증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설득하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역사 감각과 문화적 감수성이 요구된다.

대중이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2021년 SBS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학습했듯, 이러한 왕실 의례 고증 오류는 중국 네티즌들에 의해 문화 공정의 빌미로 악용될 우려가 높다. 김치, 한복 등을 자국의 문화라 우기는 '신(新) 동북공정'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한국 공중파 드라마가 스스로 자국의 문화를 종속적인 형태로 묘사한 것은 창작의 자유를 빌린 국가적 정체성 훼손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더욱 뼈아픈 것은 이 작품이 글로벌 OTT인 디즈니 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됐다는 점이다. 북미, 유럽, 중남미 등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한국 시리즈 1위에 오르며 국위선양을 하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한국의 역사적 위상을 전시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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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주인공인 아이유와 변우석이 직접 나서서 "작품이 가진 메시지와 맥락까지 살피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인 것은 이례적이면서도 씁쓸한 풍경이다. 배우가 전면에 나서 사과해야 할 만큼 사안이 중대해졌음에도 정작 이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검수했어야 할 제작진의 시스템 부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한 장면의 오류만으로 작품 전체의 성과를 지워야 하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콘텐츠 전면 폐기를 두고 지나친 처사라는 의견도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이 MBC 드라마에 오랜만에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이라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배우들의 화제성, 가상 왕실 로맨스라는 장르적 흡인력, 침체된 지상파 드라마 시장에서 거둔 시청률 성과 역시 분명한 결과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더 뼈아프다. 영향력이 큰 작품일수록 오류의 파급력도 커진다. 높은 시청률은 성과의 증거이지만 동시에 더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는 책임의 근거이기도 하다.
드라마 한 장면을 둘러싼 논란이 국회 청원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그만큼 시청자들이 역사와 문화 재현 문제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콘텐츠 산업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기준선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1세기 대군부인'이 '조선구마사'에 이어 역사 왜곡 논란으로 폐기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