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수상 유력....본상 주기 싫어 만든 카테고리 의심 피할 수 없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 베스트 라틴 송 /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퍼포먼스 /
베스트 알앤비 콜라보-듀오·그룹 퍼포먼스 / 베스트 트래디셔널 포크 앨범
2027년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선보일 신설 부문 명단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단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일 거다. 영국 BBC는 이번 신설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드 버니가 지난해 스페인어 앨범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최초로 받은 데 이어,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Golden)’이 역시 케이팝으로선 최초로 그래미상을 받은 것에 따른 주최 측의 조치로 해석했다. 실제 그래미 어워즈의 CEO인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이번 부문 수 확대로 “더 많은 작곡·작사가, 아티스트, 프로듀서의 입지를 대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인종에선 보수적이고 국적에선 배타적인 시상식이라는 오랜 지적을 상쇄시켜줄 “포용적” 조치라는 게 그래미 최고경영자의 입장이다.
전반적으로 좋은 취지다. 환영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혹시 케이, 제이, 씨(C, China)팝 아티스트에게 그래미 본상(General Field)을 주지 않고도 ‘그래미 수상’이란 타이틀을 제공했다는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 그래미 주관 단체)의 면피용 구실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 자체로 대단한 기록인 다섯 차례 그래미 노미네이트 끝에 BTS가 만약 저 상을, 아니 저 상‘만’ 받는다면 우린 과연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한국 팬들은 기왕이면 게토화 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보다 올해의 노래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상을 받길 더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우린 경험으로 안다. 도대체 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안’은 이토록 그래미 앞에만 서면 작아져야 하는가. 그건 오래된 그래미 어워즈의 구조적 관성과 투표단의 성향 때문이다.
일단 그래미는 순혈주의적이다. 이건 미국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 프로듀서, 엔지니어, 평론가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투표권자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최근 몇 년 동안 다양성을 명분으로 젊은 층과 유색인종 회원을 대거 영입해 체질 개선을 시도했음에도 전체 그래미 투표권자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백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곧 알파벳을 곁들인 ‘팝’이 아닌 종주국으로서 백인 예술가들이 주도해온 순수 영미권 팝을 본상 후보에 더 많이 올리겠다는 무언의 체제에 가깝다. 이 인종적 기욺 현상은 언어에도 반영되는데, 영어가 아닌 외국어 노래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대중성을 가늠하는 핵심 매체인 주류 라디오가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미 본상을 노리는 해외 아티스트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스페인어 음악으로 그래미 정상에 오른 배드 버니가 그래서 대단한 것이고,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영어로 ‘아파트(APT.)’를 불러 본상 후보에 오른 일이나 BTS가 새 앨범 ‘아리랑’에서 영어 가사 쪽으로 기운 것 역시 그래서였다.

인종과 국적, 언어 외 투표단의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인 것도 케이팝의 본상 수상에 장벽이 되고 있다. 팝, 록, 알앤비 문법에 익숙한 40대 이상 중장년 층은 대개 아티스트 스스로 곡을 만들고 통제한 작품에서 예술성과 진정성(작품의 예술성과 진정성은 그래미 어워즈의 존립 근거이기도 하다)을 보기 때문이다. 거대 기획사의 시스템을 통한 케이팝의 집단 제작 방식이나 댄스 퍼포먼스 중심의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그래서 저들에게 ‘음악적 예술성’보단 ‘공장형 상업 비즈니스’로 치부될 확률이 높다. 이는 어쩌면 그래미의 꽃 중 하나인 베스트 신인상을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받고 캣츠아이는 받지 못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저들이 대규모 글로벌 팬덤의 조직적인 스트리밍 총공이나 앨범 대량 구매를 통한 빌보드 차트 진입을 온전한 대중적 흥행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빌보드 뮤직 어워즈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는 날아다니는 BTS가 그래미 앞에선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출퇴근길 라디오에서 주구장창 흘러나와 미국 전역의 대중에게 가닿는 음악에 호의적인 40대 이상이 잠식하고 있는 투표단의 ‘작가주의’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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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 보면, 신설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가 혹 과거 그래미가 라틴계나 랩·힙합 부문을 대했던 것처럼 미국을 비롯한 세계 팝 시장을 뒤흔들 만큼 거대해진 특정 장르(케이팝) 및 문화권에 본상을 주기 꺼려해 마련한 별도 카테고리는 아닐까 하는 건 합리적 의심일 수 있다. 아직 그래미 투표단을 지배하고 있는 영미권 주류 음악계 입장에서 케이팝은 자신들이 오랜 기간 다져온 ‘팝의 표준’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으로 느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부디 이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며, 이변이 없는 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상을 받을 BTS가 이번엔 꼭 그래미 본상까지 거머쥐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미가 얘기하는 다양성과 포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순혈주의적 헤게모니의 붕괴는 필수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