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청산 절차를 밟는 가운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출자회사들이 파산을 막으려고 '공모형 PF(프로젝트파이낸싱) 조정위원회'를 통해 중재를 요청했음에도 국토교통부는 접수 기간이 아닌데다, 사업자들의 이해 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며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숨이 넘어가는 응급환자가 찾아왔는데 '진료시간이 지났고 중증환자'란 이유로 문전박대한 셈이다.
◇공모형 PF조정委 거부…"중증환자 문전박대"
발사업의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은 10일 국토부에 '공모형 PF 조정위원회'의 조정 신청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전날 국토부에서 신청 접수를 거부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용산역세권개발㈜ 관계자는 "파산 절차를 밟게 되면서 각종 소송전과 서부이촌동 주민 피해 등 막대한 후폭풍이 불가피해 최후의 보루라고 여기고 정부 중재를 요청한 것"이라며 "전날 담당자들이 국토부를 방문했으나 접수를 받지 않아 우편을 통해 재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요지부동이다. 공모형 PF 조정 대상은 이미 지난해 11~12월 사이 접수를 완료했기 때문에 추가로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모형 PF 조정 대상 접수는 상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간이 정해져 있어 절차나 형식에 맞지 않다"며 "기본적인 사업 구조에 대해 투자자간 동의하고 일부에 대해서만 이견이 있을 경우가 해당되는데, 용산개발사업은 거의 모든 부분이 합의돼 있지 않아 내용적으로도 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도 이와 관련, "민관 합동인 공모형 PF 사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만 코레일이 사업 파산 이후 경영 위기가 올 경우 철도 운송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정부가 면밀하게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 파산, 코레일 경영악화 불가피
이같은 정부의 선긋기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사업에 직접 개입할 수 없더라도 파장의 심각성을 고려, 적극적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시점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한 민간출자회사 고위 관계자는 "사업 파산으로 2대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은 이미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최대주주인 코레일도 경영난을 피할 수 없다"며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원칙만 내세워 합법적인 중재 권한을 발동하지 않으려 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업 최대주주이자 땅주인인 코레일은 토지대금 반환과 투자금 손실에 따른 자본잠식 가능성이 커 철도 운송사업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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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도 이를 염려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 코레일은 용산개발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했던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와 ABS(자산유동화증권) 2조4167억원을 오는 12월까지 순차적으로 상환해야 한다.
자금 마련을 위해선 코레일의 공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의 2배에서 4배로 높여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부채비율 상승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피할 수 없다. 코레일은 지난해 3384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차입금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상승으로 손실 확대가 불가피하다.
◇천문학적 손해배상 난타전 본격화 조짐
최종 파산시 개발구역에 포함된 일부 서부이촌동 주민뿐 아니라 출자회사들 사이에 손실의 귀책사유를 가리기 위한 대규모 소송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무산되면 투자자들이 허공에 날리는 돈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소송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8일 용산개발사업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일대 11개 구역 주민들은 서울시와 코레일 등을 상대로 재산권 피해 등의 이유로 20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주민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한우리에 따르면 △이주비 명목으로 빌린 가구당 약 4000만원의 은행대출금 △구역내 상권 황폐화로 인한 상가의 매출 감소 △개발계획 발표 뒤 상승한 공시지가에 따른 재산세 인상분 △새 주거지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해 입은 피해에 대한 위자료 등이 소송에 포함됐다.
앞서 민간출자회사들은 코레일에게 사업 무산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7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검토한 바 있다. 용산개발사업에 투자한 푸르덴셜과 같은 외국계 투자자들로 인해 국제적인 소송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
김기병 드림허브(용산개발 시행사) 이사회 의장은 "용산개발사업은 2011년 7월 출자사간 사업정상화 조치 이후 국토부로부터 대표적인 공모형 PF의 조정 사례로 평가받았고 조정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됐을 정도"라며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