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시장도 뒤숭숭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환율과 주가, 금리에 긴장을 놓을 틈이 없습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얼마전까지 치솟는 물가잡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이제는 금융시장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재무부는 물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붕괴 직전의 월가를 '과감히' 구하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시장주의의 첨병이었지만 위기가 닥치자 관치금융의 선봉에 섰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시대에 믿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들 뿐이어서 시장은 안도하는 모습입니다.
중앙은행이 '사회의 안전망'(Safety Net)으로 부각되는 요즘 한은도 걱정이 많은 것같습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꼽히는 이번 사태의 파장이 미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죠.
한은 관계자는 "만약 국내시장에 위기가 닥치면 우리가 얼마나 신속히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금융지원을 결정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소신 있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금융회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위기가 닥쳐도 어떤 금융회사에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요청할 수도, 해당 회사에 대해 직접 조사에 나설 수도 없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내년부터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됩니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만약 일부 증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할 경우 한은은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저 증권사가 어떤 상태인지 직접 알아볼 수 없는데 긴급 자금 요청을 받는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색을 표합니다.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서는 법 개정의 취지에 매우 공감하면서도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꺼립니다. 그는 "법 개정은 혹시 모를 금융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중요한 과제"라면서도 "정작 이를 주장할 경우 위기에서 잇속만 챙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은 사람들은 간이 작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은이 절박하게 느끼는 사안이라면 공론에 부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정부 탓이냐"고 역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와 당당히 다툴 때 시장에도 파격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