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보)랩 판매 좌절에 은행권 격앙..당국 "판매 허용, 은행·보험사 동시할 것"
"보험사도 파는데 우리는 왜..."
28일 '랩 어카운트(맞춤형 자산관리계좌)' 판매가 좌절된 것에 대해 은행권이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증권사 로비에 넘어간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시중은행 부행장들은 이날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은행법 시행령 개정안 취지와 설명을 들었다. 개정안에는 금지해야 할 불공정거래 행위, 사외이사 자격 제한 등 여러 사안이 포함됐지만, 부행장들의 관심은 온통 '랩 어카운트'에 쏠렸다.
증권사가 주로 판매하는 이 상품은 고객계좌에 주식·채권·펀드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짜 넣어준다. 최근 고수익을 내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계약 규모가 1년 전 13조 원대에서 28조 원 가량으로 급성장했다. 수수료도 연 2~3%로 평균 주식형 펀드 수수료를 웃돈다. 돈 되는 장사라 은행들이 군침을 흘렸고, 그동안 '랩 어카운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에도 은행에 대한 랩 상품 허용 문제가 논의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흐지부지됐다.
일임형 랩을 은행에 허용하면 특정 업체들이 취급을 독차지하는 과점 체제가 깨지면서 고객 선택폭이 넓어진다는 게 은행권 주장이었다. 방대한 영업망을 통해 그간 랩 상품에서 소외됐거나 잘 몰랐던 고객들이 이 상품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규제 완화 차원에서도 판매 허용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은행권이 착실히 준비해온 만큼 상당수 실무자들은 판매 허용을 당연시했다. 그래서 받은 충격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개정안은 투자 자문업만 은행의 겸영업무로 허용했고, 투자 일임업은 추후 과제로 남겨뒀다. 이러면 은행이 고객 돈을 받아 운용할 수 없게 되니, 당연히 랩 어카운트를 취급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금융지주회사들이 계열사로 은행 뿐 아니라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보험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끼리 랩 상품을 동시 취급하며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논리였다.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다.
국제적인 흐름도 감안됐다. 대부부의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이후 은행을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금융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대두된 탓이다. 권 부위원장이 "국제적 논의 동향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이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도 "은행들도 아직 랩 준비가 덜 되지 않았냐는 분위기였고, 랩 보다는 대출과 서민금융 지원 쪽 얘기가 더 나왔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러나 "지금까지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여러 준비를 해왔는데 실망스럽다"며 "은행에 판매를 허용한다고 해도 은행들이 당장 랩을 많이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쪽에도 보험처럼 일단 일임형을 허용하고, 개별 은행별로 시스템 인프라 등 준비상황을 점검해 영업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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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이 괜찮을 때는 랩 상품이 좋지만 안 좋을 때는 문제가 커질 수 있어 착실히 준비를 해왔다"며 "포괄적으로 시장을 조사하고 자료를 모으는 단계로 준비해 왔는데 원천적으로 이를 막아버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금융위는 그러나 보험사에만 랩 어카운트 판매를 허용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은 보험 겸영업무 범위에 투자 자문업과 일임업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 업무를 영위하려면 당국에 등록해야 하는데 당분간 이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은행과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과 보험사에 대한 랩 어카운트 판매가 허용된다면 동시에 이뤄지게 될 것"이라며 "은행의 업무범위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 동향을 살펴본 뒤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