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고객보호' 새화두 정조준

금융사, '고객보호' 새화두 정조준

오상헌 기자, 박종진
2012.01.01 05:45

[2012 신년기획]<금융도 소비자시대><上> 패러다임이 바뀐다

"따뜻한 금융".

금융당국 수장들이 새해 금융감독정책의 '제1 화두'로 던진 말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따뜻한 금융정책을 펴겠다"고 공개적으로 예고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마찬가지다. 틈만 나면 금융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그 중심에 바로 '금융 소비자 보호'가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감독이나 금융정책도 금융회사의 건전성 위주에서 벗어나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금융 소비자 보호가 취약하면 금융·경제시스템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 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히 드러낸 실례가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탐욕'에 가득찬 금융회사들의 모기지 대출상품 불완전판매와 '무능'한 감독당국의 영업행위 방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작 금융 소비자는 빠져 있었다.

강민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소비자 보호없이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며 "주요 선진국들도 강화된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 확립을 위해 제도 개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銀 후순위채 불완전판매에 은행 대출중단까지 '소비자는 봉?'

금융 소비자 보호는 지난 해 국내 금융권에서도 가장 많이 입을 탄 단어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달 18일 선정한 2011년 금융 10대 뉴스만 봐도 그렇다. 금소연은 △저축은행 영업정지와 후순위채 피해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이미지 추락 △금융사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 및 해킹사고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소송 △가계대출 중단과 가계부채 문제 부각 △카드수수료 인하 요구와 전화사기 △론스타 사태와 하나은행 인수 △농협의 장기간 전산 중단사태 △금융권의 담합 고발 △유럽의 금융위기 등을 10대 뉴스로 꼽았다.

이 중 론스타 논란과 유럽 금융위기를 제하더라도 8개가 금융 소비자 보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다. 금소연은 "올 한해는 금융소비자들의 금융피해가 가장 부각된 해"라고 밝혔다.

특히 저축은행 사태는 전국민적 공분을 산 최악의 사건이었다. 캐면 캘수록 드러나는 저축은행의 갖가지 불법과 비리도 엽기적이었지만 더 충격스러운 건 후순위채 판매 실태였다. 저축은행들은 예금자 보호대상이 아닌 후순위채를 예금상품 팔듯 무분별하게 팔았다. 투자자의 상당수는 금융지식에 어두운 노인들이었다.

금융당국이 지난 해부터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추진하게 된 것도 바로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가 직접적인 분기점이었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체계를 재점검하겠다는 취지였다.

현대캐피탈과 농협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과 해킹사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전면 중단 사태, 은행과 카드사의 과도한 수수료 논란, 카드론 전화금융(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금융회사들이 소비자 권익에는 뒷짐을 졌다 벌어진 일들이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미국 월가 점령 구호가 한국에서 '여의도 점령' 시위로 나타났던 건 국내 금융권이 여전히 고객 보호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금융 소비자 없인 금융회사도 없다" 금융 패러다임 바뀐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지만 얻은 것도 적잖았다. 금융감독당국 주도로 불합리한 금융관행 개선이 이뤄졌고 금융의 패러다임이 '금융회사'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다. 금융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담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도 올해 설립된다.

실제 금융 소비자에 이익이 돌아가는 개선책도 여러 건 마련됐다. 카드회사가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율을 인하한 것이나 은행들이 자동화기기(ATM) 수수료를 일제히 내린 게 대표적이다. 금융회사 여수신 행태 전반의 불합리한 관행도 개선되는 과정에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부터 은행과 상호금융조합, 여전사, 보험사 등 전 금융업종의 여수신 관행에 대한 실태 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은행 등의 대출 연체이자율을 하향조정하고 연체이자율 하한선을 폐지키로 했다. 예금담보대출의 가산금리 인하와 연체이자 폐지, 보험계약대출의 가산금리 인하도 성과 중 하나다.

정기예적금의 중도해지이자 지급방법 개선이나 카드상품별 실제 적용금리 분포 비교공시 강화 조치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금융감독당국이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불합리한 각종 금융제도 와 관행을 개선한 건수는 올 들어 지난 해 3/4분기까지 54건에 달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은행 등 금융회사들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탐욕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은행들은 저마다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직원 평가시 '실질적'으로 고객에게 이익이 얼마나 돌아갔는지를 측정해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해 '따뜻한 금융'을 표방했던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의지를 담은 사자성어로 '이타자리'(利他自利)를 언급했다.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다보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고객 이익 보호에 중점을 두면 결국 은행도 이익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금융당국도 새해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화두가 국내 금융권에 완전히 뿌리내리는 한 해로 삼을 계획이다. 특히 서민과 중소기업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감독정책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글로벌 금융불안이 올해 실물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면 금융소외계층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이 올해 1/4분기까지 마련키로 한 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방안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서민전용 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햇살론 등의 활성화나 청년창업 금융지원,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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