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KPI와 PPT의 공통점, 그리고 ISA

[기자수첩]KPI와 PPT의 공통점, 그리고 ISA

권다희 기자
2016.03.28 04:54

"은행 KPI(핵심성과지표)는 파워포인트(PPT)와 유사하다."

2000년대 수년간 은행 임원으로 재직했던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이슈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KPI를 꺼냈다.

"PPT는 실제 담긴 내용을 '더 있어 보이게' 포장할 수 있다는 독성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오히려 소통의 질을 떨어뜨린다. KPI 역시 상품을 개발한 본부가 지점을 다루는 걸 쉽게 만들기 때문에 남용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남용이 멈춰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도한 KPI 의존은 숫자 이면에 담긴 걸 간과하게 해 경영진을 불성실하게 만든다. 직원들이 KPI에 지나치게 신경쓰면 실제 고객이 받는 서비스 질에 신경을 덜 쓰게 되기 때문이다."

KPI가 은행에서 남용되면서 은행 경쟁력 향상이란 도입취지에 반하는 경향이 있다는 그의 지적은 ISA 출시 후 벌어지고 있는 '할당영업'의 폐해와 맞물려 더 와 닿았다.

출시된 지 보름밖에 안된 ISA를 둘러싸고 이미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본부로부터 팔아야 할 할당량을 받은 은행 직원들은 '언제까지 얼만큼을 채워야 한다'는 임무 수행에 급급해 무리수를 동원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가족, 지인 동원은 물론이고, 일부 지점에선 은행 셔터를 내린 뒤 가입하는 편법까지 동원됐다.

KPI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 사업본부제가 도입되면서 은행 평가시스템의 뼈대로 자리잡았다.

KPI는 자의적인 평가가 아닌 정량화된 잣대로 객관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순기능이 있다. 전국 곳곳의 거대한 채널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KPI를 대체할 도구도 없다.

하지만 본부가 목표를 세운 뒤 각 지점에 일률적으로 '할당'하는 KPI '활용법'의 역기능도 간과할 수 없다. 지점 특성을 무시한 채 부여된 일률적인 목표는 멀리 보면 은행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어떻게 하면 고객들에게 더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뒷전으로 미루게 해 실제로 소비자들이 받는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은행 경쟁력을 높이려면 경쟁을 무조건적으로 더 가열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경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카드 몇 좌, 방카 몇 개' 식으로 뿌리내려진 일률적인 할당영업이 경쟁의 질에 쓸 힘을 빼앗아 가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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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권다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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