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규정 바꾸면 금융회사가 알아서 따르는데…"

[우보세]"규정 바꾸면 금융회사가 알아서 따르는데…"

이학렬 기자
2017.12.26 16:56

"법이나 규정을 바꾸면 금융회사가 알아서 할텐데…"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에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행정지도와 구두로 주문하자 금융권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시행됐다. 시행에 앞서 금융회사는 법과 시행령, 감독규정, 감독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만들었다.

각종 규제를 받는데 익숙한 금융회사는 지배구조 역시 법과 규정에 따라 정비했다. 금융당국이 주요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를 들여다봤지만 이렇다할 법 위반 사례를 찾아낼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것은 경영유의사항을 통해서다. 경영유의사항은 금융회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적 성격의 조치다. 지난 9월에는 신한금융지주에도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했다.

행정지도지만 금융회사는 감독당국의 개선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하나금융은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어 회장을 배제하고 사외이사 전원으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안을 의결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도 금융당국의 지도에 따라 조만간 지배구조를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다만 금융당국이 관련 법이나 규정을 바꿔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명확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행정지도와 구두지시는 법과 규정을 다 지켜도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빌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역시 현재 지도하고 있는 방향의 지배구조 내용을 법에 담으려 했다. 2011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정 당시 초안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 사내이사를 배제하는 조항을 포함해 경영진의 사외이사 추천을 막으려 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법무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내용은 최종 법안에서 빠졌다. 법무부는 사추위가 이사회 내부 위원회인데 등기이사인 사내이사를 배제하고 이사 자격이 없는 외부전문가와 사외이사로만 구성하도록 하면 상법체계와 상충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으로 사추위에서 사내이사를 제외할 수 없자 금융당국은 행정지도로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하고 사외이사를 누가 추천했는지 명확히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또 사외이사 평가에서 회장을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모두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법 개정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긴박하게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행정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그만큼 긴박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1년 이상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른 금융지주회사의 회추위와 사추위에 대해 문제 삼지 않다가 지금 목소리 높여 시급한 개선을 요구하는 배경도 궁금하다. 올초 신한금융에 대한 지배구조 점검 때도 회추위와 사추위에 대해 지금과 같은 내용의 개선 요구는 없었다.

그림자 규제인 행정지도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행정지도는 강제력이 없음에도 사실상 강제력이 부여되는데다 자의적인 부분이 많아 금융회사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행정지도 대신에 감독규정이나 감독규정 시행세칙에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점차 행정지도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의 비공식 절차에 따른 지시 관행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금융당국이 규정이 아닌 행정지도와 구두로 금융회사를 옭아매려 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도 부작용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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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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