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당신의 보험료, 안녕하신가요

[우보세]당신의 보험료, 안녕하신가요

전혜영 기자
2018.03.29 04:4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외국계 A보험사가 판매하는 B보험은 손해율이 50%대다. 손해율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손해율이 50%라는 건 보험료로 100원을 받아 보험금으로 50원을 지급했다는 의미다. 통상 손해율이 낮은 보험상품은 갱신 시점에 보험료를 인하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A사는 갱신 시점에 B보험의 보험료를 오히려 인상했다.

금융당국이 손해율도 낮은데 보험료를 왜 올렸느냐고 묻자 A보험사는 사업비 등 각종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설계사 등 판매채널에 쓰는 사업비를 올렸다는 이유로 손해율이 낮아지는데도 보험료를 인상했다는 것은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줘야 할 혜택을 매출을 늘리려 설계사와 법인대리점(GA) 등에 줬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A보험사에 어떤 조치도 내릴 수단이 없었다.

국내 보험업계는 2015년 이전까지 보험상품 설계는 물론 가격 결정까지 철저하게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았다. 상품 구조와 가격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상품들이 ‘붕어빵’처럼 양산되자 상품이 아니라 판매채널로 경쟁을 벌였다. 어떤 보험사가 설계사를 많이 확보하느냐로 실적이 좌우되는 식이었다.

금융당국은 2015년 말 양적 경쟁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상품으로 질적 경쟁을 펼치라는 취지로 규제를 완화하며 가격을 자율화했다. 이에따라 수년간 만성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보험료 인상이 억제됐던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의 보험료가 줄줄이 올랐다. 보험사들이 지난해 어려운 영업환경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배경에는 보험료 인상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보험료를 무턱대고 올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손해율이 떨어지자 다시 보험료를 인하하기도 했고 저렴한 보험료로 필요한 위험만 보장하는 미니보험을 내놓으며 상품 선택의 폭도 넓혔다.

문제는 가격 자율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A보험사처럼 충분히 보험료 인하 여력이 있는데도 갱신 보험료를 올리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보험업계에 자율권을 준 것은 질적 경쟁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한편 보험료 정상화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하라는데 있다. 손해를 보고 팔던 상품의 보험료는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되 손해율이 낮은 상품은 보험료를 인하해 합리적으로 판매하라는 의미다.

소비자 보호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개념이 아니다. 고객을 영문도 모르는 채 불합리하게 비싼 보험료를 내는 ‘봉’으로 만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철저한 사후 점검을 통해 가격 인상에 ‘꼼수’는 없었는지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금융부 차장 전혜영
머니투데이 금융부 차장 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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