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은 산업은행에 효자였다. 산은은 2001년 한전 자회사 민영화 과정에서 과도한 지급보증으로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이 떨어지자 정부로부터 한전 주식을 현물출자 받았다. 건전성 하락을 막기 위해 한전 지분을 떠안았지만 안정적인 수익으로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 2016년 해운 구조조정으로 산은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한전은 산은에 6547억원의 배당금을 내줬다.
하지만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이제는 산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에만 한전 때문에 8조원의 손실이 회계장부에 인식됐다. 산은의 지난해 BIS 비율(13.4%)이 전년보다 1.48%포인트 떨어진 것은 한전의 영향이 크다. 지분법으로 한전의 손실을 인식한 산은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7조6000억원에 이른다. '정부에서 출자받은 것을 앞으로 회계 반영에 넣지 않는 방법도 찾으려고 했다'는 농담 섞인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국책은행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뤄지는 땜질식 현물출자는 한전뿐만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 정부는 재무건전성 개선을 이유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분을 산은과 수출입은행에 각각 4000억원, 2조원을 출자했다.
현물출자 규모 만큼 자본이 확충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책은행에 유입되는 현금은 없다. 사실상 정부의 주머니 속에서 증권이 옮겨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돈(예산)은 들지 않는데, 돈을 쓴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가 현물출자 카드를 남발하는 이유다.
한전은 상장사로 시장 평가액이 있지만 LH는 어떻게 가치를 평가했는지도 불분명하다. 2016년 산은이 수은에 보유 중인 LH 지분을 현물출자하려고 했는데, 두 은행의 장부가가 달라 성사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당시 수은이 대신 받은 주식이 KAI(한국항공우주)다. 두 은행은 올해 초 급하게 외부에 LH 지분 평가용역을 맡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산은과 수은에서 총 3000억원의 배당을 받아갔다. 재무건전성이 안좋다는 이유로 현물출자를 했는데, 그 와중에 수천억원의 현금을 챙겨간 것이다.
국책은행이 어려울 때마다 땜질식으로 진행된 현물출자가 이제 은행을 흔드는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대책은 또 현물출자다. 이제는 새로운 해법을 찾을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