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넣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기존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들어설 메가특구의 주52시간 특례를 둘러싸고 산업통상부와 고용노동부, 대통령이 차례로 내놓은 해법이다. 한 정부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 제시되는 사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한 달 넘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처음부터 특례에 반대했다. 한국노총은 대화 참여가 특례 수용을 뜻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고, 6년 만에 대화에 복귀한 민주노총도 특례를 막기 위해 테이블에 앉는다고 밝혔다. 교착은 예견된 일이었다. 연내 입법을 고려하면 대화에 주어진 시간은 석 달 남짓이었지만, 정부는 합의 불발에 대비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대화 도중 여당은 특례를 담은 법안과 제외한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양대 노총은 법안 철회를 요구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특례 법안을 둘러싼 비판이 나왔다. 노사에 합의를 주문하면서 정작 여당부터 방향을 정하지 못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3일 할증임금 지급과 건강권 보호를 전제로 기존 제도의 시행령 수정이나 절차 개선 방안도 논의하라고 주문했다. 노사 간 이견이 극한 대립으로 번질 만큼 크지는 않다며 노동부에 조율도 당부했다.
그렇다면 산업부의 노동 특례 도입 입법 요구와 노동부의 합의 우선 입장은 어떻게 조율될까. 사회적 대화에서 합의가 끝내 불발된다면 정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분명한 것은 사회적 대화는 정책 결정을 위한 과정이지, 정부가 판단을 미룰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노사 간 접점을 찾는 과정은 필요하다. 다만 구체적인 대안 없이 원칙만 제시한 채 노사에 답을 요구한다면, 사회적 대화는 갈등 조정이 아니라 책임을 나눠 지우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정부가 먼저 정책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고, 노사가 이를 토대로 보완책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특례가 필요하다면 적용 대상과 기간,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를 구체화해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필요하지 않다면 분명히 선을 긋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입장을 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최근 정부는 사회적 대화에 중요한 결정을 미룬 듯 한 모습이다. 사회적 대화는 정부의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