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즐기던 사랑방… 하나 둘 사라진다

'한 수' 즐기던 사랑방… 하나 둘 사라진다

최문혁 기자, 여승헌 기자
2026.09.1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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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이용객 줄고 임대료 올라 경영난… 폐점 잇따라
불법도박장 변질, 최근엔 살인 강력범죄 발생하기도
"초고령화 사회, 노인 생활·문화공간 확충을" 목소리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기원에서 70명이 넘는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사진=여승헌 기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기원에서 70명이 넘는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사진=여승헌 기자

"이번 추석연휴에도 기원을 열 생각이에요.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까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A기원. 평일인데도 40명이 넘는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간간이 작은 대화와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한쪽에서는 바둑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의 대국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고령층이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를 보내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해온 기원이 빠르게 사라진다. 이용객 감소와 임대료 상승 등으로 경영난을 겪으면서다. 일부 기원은 수익을 내기 위해 불법도박을 허용하는 곳으로 변질됐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만큼 노인들이 일상적으로 머물 수 있는 생활·문화공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머니투데이가 둘러본 서울시내 '기료'(기원 입장료)는 하루 4000~8000원 수준이었다. 기료만 내면 영업시간 동안 자유롭게 바둑을 둘 수 있다. 기원이 은퇴한 고령 남성들의 대표적 여가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최근까지 기원을 운영했다는 70대 서병길씨는 "동네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치매예방에도 좋다"며 "기원은 노인들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했다. 하지만 기원이 점차 자취를 감춘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기점으로 폐점하는 기업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원운영업'은 별도업종으로 분류돼 있지만 규모가 작아 사업체수 등 통계를 별도집계하진 않는다. 실제로 건물 2개층을 사용하던 B기원도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1개층으로 규모를 줄였다.

서울 노원구에서 C기원을 운영하는 김모씨(65)는 "팬데믹을 겪으며 인근 기원 4곳이 모두 폐업했다"며 "기원에서 바둑을 두던 사람들도 온라인 바둑을 두기 시작해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객은 줄었지만 임대료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하루 수천 원의 기료만으로 운영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게 업주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원은 화투나 포커 등 불법도박을 허용하고 일반 기원보다 높은 기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원이 불법도박장으로 변질되면서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달 노원구의 한 기원에서는 60대 남성이 불법도박을 하던 중 시비가 붙자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 해당 기원에서는 약 2년간 불법도박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31일 해당 기원 업주와 방문객 등 5명을 도박장소 개설과 도박혐의 등으로 약식기소했다.

경찰도 일부 기원이 불법도박장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파악했지만 현장단속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 지구대 소속 경찰 관계자는 "도박범죄를 인지하고 기원을 찾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장이 없어 문을 강제개방하거나 수색할 수 없다"며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면 이미 현장을 치운 상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원의 쇠퇴를 단순히 바둑인구 감소나 개별업종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의료시설만큼이나 생활·문화공간도 노인 정신건강에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들은 은퇴 이후 직장에서 쌓아온 공적 네트워크가 사라져 외로움을 더 크게 느낀다"며 "노인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기원뿐만 아니라 취미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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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혁 기자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 최문혁 기자입니다.

여승헌 기자

안녕하세요. 편집국 여승헌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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