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가 의료기기업자에게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수술 보조를 맡긴 사실을 숨기고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의료인이 수술의 주요 부분을 담당하지 않고 일부 진료보조행위만 했더라도 의사가 해당 수술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보건범죄단속법·의료법 위반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1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심은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A씨는 의료기기 업자를 인공 고관절 수술 등에 참여시키고도 자신이 단독으로 수술한 것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통상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술을 하면 환자는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을 병원에 내고, 병원은 나머지 공단부담금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청구 내용을 심사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그 결과에 따라 병원에 비용을 지급한다. 비의료인이 의료행위에 참여한 수술은 적법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다.
쟁점이 된 사기 혐의는 A씨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015년 7월~2019년 5월 23차례에 걸쳐 총 9538만8620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의료기기 업자는 수술 부위를 벌려주는 도구를 잡거나, 인공관절을 삽입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잡아주는 등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부 절개 등 수술의 주된 의료행위는 A씨가 직접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의 사기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2심은 A씨의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의료기기업자의 역할이 극히 일부 진료보조행위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했다. 비의료인이 직접 피부를 절개하거나 봉합한 경우와 이번 사건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A씨에게 요양급여비용을 가로챌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요양급여비용을 적법하게 받으려면 의료기관이 적법하게 개설됐을 뿐 아니라 개별 의료행위도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비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했다면 요양급여비용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의사와 함께 의료행위를 한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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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A씨가 비의료인의 수술 참여 사실을 숨기고 적법하게 수술한 것처럼 비용을 청구한 행위는 건보공단의 지급 결정에 착오를 일으키는 기망행위라고 봤다. A씨의 직업과 경력 및 범행 경위 등을 종합하면 편취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사기죄가 성립하는 범위는 해당 수술에 관한 요양급여비용으로 한정했다. 의료기기업자가 수술 자체에만 가담한 만큼 수술 이외의 입원비·약제비·검사비 등에 관한 요양급여까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