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X' 5·18 소재 다루자 방영 중단 청원…배우 SNS에도 비난 댓글
'암살자(들)' 제작진 고발·배우 자택 앞 시위도…"창작 위축 우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역사 왜곡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방영 중단 요구와 제작진 고발을 넘어 배우 개인에 대한 사상 검증까지 이어지며 문화예술계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방송계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SBS 닥터X 드라마 방영 중단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의학 드라마에 역사·정치적 소재가 포함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제작 과정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공개 전 동의 요건인 100명을 충족해 국회에서 공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논란이 된 회차는 지난 24일 방송된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6회다. 극 중 주인공 계수정(김지원) 등이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인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환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은 뒤 40년 넘게 후유증에 시달리는 인물로 등장했다. 방송 이후 김지원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는 비난 댓글이 잇따랐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최근 연이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역사 왜곡 주장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고,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는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작품에 대한 비판이 창작자와 배우 개인을 겨냥한 공격으로 번지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품을 평가할 시민의 자율성과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불만을 법적 대응이나 배우 자택 앞 시위로 표출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해 작품을 감상할 기회 자체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도 "드라마나 영화 등 콘텐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토론하거나 학술적으로 검증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고발이나 국회 청원은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와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일부의 주장이 전체 여론인 것처럼 확대되는 현상도 문제로 지목된다. 김성수 평론가는 "특정인을 겨냥한 이른바 '좌표 찍기'로 인해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논란'이라는 표현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듯한 착시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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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중심으로 심화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SNS에서 이념적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성향이 다른 집단에 강한 반발을 보이거나 상대를 범죄시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이같은 사상 검증식 접근이 이어지면 국내 창작자들이 위축돼 자기 검열에 빠지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활동 대신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국내 문화예술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