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졸공채 조영만씨, 입사 8개월만에…

삼성 고졸공채 조영만씨, 입사 8개월만에…

정지은 기자
2013.03.27 05:07

작년7월 삼성전자 입사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근무

삼성전자 고졸 공채 1기 조영만 사원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구혜정 기자 photonine@)
삼성전자 고졸 공채 1기 조영만 사원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구혜정 기자 photonine@)

'과연 고졸 출신이 대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방끈이 짧다고 무시는 당하지 않을까...'

고졸이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하나 구하기 힘들었던 스무 살, 사회 새내기에게 대기업은 언감생심이었다. 큰 욕심은 없었다. 단지 매일 아침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소박한 바람조차 결코 쉽지 않았다. 학벌(學閥)이 능력보다 우선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다고 처음부터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빨간딱지'가 온 집안에 붙었다. 집이 파산하는 위기에서 대학 진학은 사치였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취직 준비를 했다. 아르바이트조차 대졸자를 우대하는 시대였지만 죽을힘까지 다했다. 마침내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생겼다.

지난해 7월,삼성전자(226,000원 ▲4,000 +1.8%)의 첫 번째 고졸 공채에서 합격한 조영만(20) 사원의 이야기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조씨의 첫 직장. 대졸자만을 뽑는 일부 기업에는 지원 자격 미달로 원서조차 못냈다. 그랬던 그가 글로벌 기업으로 통하는 삼성전자의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실에서 함께 일하는 50~60명 중 유일한 고졸 인재가 됐다.

공채 합격 비결을 묻자 조 사원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고 얼굴을 붉혔다. "나는 특별한 인재는 아니다"라고 수줍어하던 그는 "면접에서 보인 솔직함이 신뢰를 준 게 아닐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정형편이 기울어지면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고. 그는 "부끄럽지는 않았어요. 이 힘든 경험은 제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계기가 됐으니까요"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입사 뒤 가장 달라진 큰 변화로는 '자신감'을 꼽았다. "입사해보니 고졸 출신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었다. 업무 관련 교육을 받고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발전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학력에 대한 배고픔도 없다. "사내 교육을 받으며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다.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열심히 배우고 성장해서 좋은 인재로 크고 싶다"며 못 이룬 대학진학의 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연년생인 남동생도 지난 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는 취업 준비중인 동생에게 "고졸 출신이라도 차별은 없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저는 이곳에서 제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스펙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스펙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접니다."

여느 직장인이나 회사생활이 고단하고 힘들다 토로하지만 그는 다르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 특성상 업무시간만으로는 모자랄 때가 발생하면 자발적으로 야근한다. 한 번은 새벽 2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이제 조씨에게 더 이상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중요하지 않다. 20대 출발선상에 있는 다른 또래에 비해 실무 경험은 물론 급여까지 많다. 자신과 같은 고졸 출신이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힘내라'고 응원할 여유도 생겼다.

조씨에게 몇 가지 꿈이 있다. 우선 첫 번째는 '고졸 채용'의 확산이다. 그는 "요즘 열린 채용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대기업 위주인 게 사실"이라며 "중소기업에서도 고졸 출신 인재를 반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700명을 선발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고졸 공채를 실시해 사무직과 기술직 인력을 선발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그는 "후배가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했다. 고졸 공채 선배로서 책임감을 갖고, 후배가 들어오면 대화하며 자신이 했던 고민을 그들과 나눌 생각이다.

그는 이번 공채 지원자들에게 "솔직함으로 승부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면접전형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포장하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바꾸기 위한 노력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삼성전자의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불과 9개월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꿈이다. 고졸 출신 또는 여성 임원이 탄생할 때마다 조씨는 더욱 의지를 다진다. 현재 삼성그룹에는 고졸로 입사해 사장으로 승진한 사람도 적지 않다. LG전자 조성진 사장도 고졸이지만 사장까지 올랐다는 사실이 그의 이런 꿈을 뒷받침한다.

"고졸 공채 사원이 임원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제가 하는 업무에서도 최고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도전할래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요즘 어학공부에도 힘을 쏟고 있다. 늦어도 10년 안에는 외국계 기업 관계자와 원활하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어학 수준을 끌어올릴 심산이다. 몇 년 뒤에는 군대도 가야하지만 그 순간에도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업무가 아닌 인생에 대한 조 사원의 최종 목표는 따로 있다. 언젠가 가정을 꾸렸을 때 자신의 2세가 탄생하면 그들에게도 열린 채용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선물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될 겁니다. 고졸 출신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열린 채용 시대가 조성되지 않을까요? 제 아이들에게 열린 채용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열린 채용으로 고졸 출신의 성장가능성에 투자하고 있는 삼성전자. 그는 그 투자의 첫째 혜택을 받은 만큼 자신과 삼성전자, 후배들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30시간, 아니 40시간으로 늘려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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