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비상'電爭']정상 가동 중 전력 3% 절감은 불가능···업종 특성 고려해야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한반도를 강타한 가운데 정부가 기업들의 무관심을 전력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들의 절전 이행 실적을 발표하면서 절전 규제를 지키지 않은 20여개 대기업 리스트를 발표했다. 이행률이 89.4%를 기록한 지난 겨울철에 비해 약 7%포인트 낮은 83% 수준에 그친 이유를 이들 기업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에 리스트에 포함된 LG화학·SK케미칼·한화케미칼·S-OIL(113,300원 ▲4,900 +4.52%)등 석화업체들은 곤혹스런 표정이다.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석유화학 공장의 특성상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기세는 기업 입장에서도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다. 굳이 정부 규제가 아니더라도 평상시 가능한 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
화학업체 A사 관계자는 "에어컨 사용을 줄이거나 전등을 끄는 등 사무실에서 아낄 수 있는 전력양은 공장 설비를 돌리는데 들어가는 전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며 "정부 기준인 전력량 3% 절감은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부 방침에 따르기 위해서는 한 두 라인 정도를 아예 멈춰야 하는데 생산에 차질을 빚어가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업들은 정부가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기업을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체 공장에서 절감한 전력량의 총합이 기준치를 넘겼더라도 단 하나의 공장이 이행 실적에 미달됐다면 절전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으로 낙인찍는다는 것이다.
실제로LG화학(318,000원 ▲4,000 +1.27%)의 경우 전국 18개의 공장 가운데 17개는 이행 기준을 만족시켰지만, 용해로를 끌 수 없는 파주 유리공장이 절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이번 리스트에 포함됐다. 파주공장은 최근 유리 생산량이 늘면서 전력 절감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케미칼(45,000원 0%)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이행률 규제에 걸린 공장은 여수의 폴리실리콘 공장. 현재 본격적인 상업생산을 앞두고 시험가동 중인 상태인데도 규제의 대상이 됐다. '기존 전력량의 3% 절감'이라는 일괄적인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생겨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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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다. 일단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으로 정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8월 한 달간 공장 가동률을 낮췄다. 특히 한전 전력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전해공정의 가동룰을 70% 수준으로 조정해 평상시 대비 시간당 약 30MW 이상의 전력을 절감 중이다.
LG화학 역시 정기보수 일정을 8월로 집중시키고 집중휴가제를 실시하는 등 가동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냉동기나 압축기 등 전력소모가 큰 설비들은 최대한 피크시간을 피해 가동하고 보유 중인 자가 발전기의 가동률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그밖에 하절기 복장 시행이나 실내 온도 27도 유지, 실내조명 점등시간 조절 및 적정 조도 유지 등 조금이라도 전력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정상적인 설비가동 중 전체 소요 전력의 3%이상을 절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절전 규제를 위반해 내는 벌금보다 생산 차질로 인한 손해가 더 크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부 방침에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만 압박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