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자존심' 싸움 프레임 벗어나야… '승자의 저주' 예외없다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입찰과 관련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면서 최종 승자가 누가될 것이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재계 1·2위를 다투는 거대 공룡의 싸움인데다 평소에는 업종이 달라 직접 경쟁할 일이 없다는 ‘희소성’까지 더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전의 부지 인수자는 최고가 입찰경쟁 방식으로 결정된다. 1원이라도 더 써 낸 쪽이 승자가 되는 방식이어서 ‘쩐(錢)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재계 1,2위간 자존심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지를 팔아 부채를 줄이려는 한전이나 관리 감독하는 정부나 초반 흥행몰이가 싫지 않은 눈치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 등 양쪽을 출입한 경험을 가진 기자 입장에서 보면 과열경쟁이 우리 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 남광토건을 인수했던 대한전선그룹처럼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한전 부지의 감정가격만은 3조3346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서울시에 기부채납을 해야 하는 규모가 40%로 약 1조3300억원 정도다. 2조~3조원으로 추산되는 건설비용과 취·등록세와 각종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한전 부지 개발에 필요한 자금은 10조원을 훌쩍 넘길 공산이 크다.
제대로 된 개발을 하려면 한전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인근 부동산도 매입해야 한다. 부지 인수 가격은 감정가를 웃돌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총 개발비용이 15조~20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
현재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규모는 약 66조원과 42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매대금으로 지급해야 돈과 시설투자나 연구개발(R&D)에 써야할 돈이 모두 포함돼 있는 개념이어서 실제 부지 인수에 쓸 수 있는 돈은 크게 줄어든다.
결국 삼성이나 현대차 모두 10조~15조원을 투자해야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규모다. 특히 삼성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고 현대차 역시 엔저를 앞세운 일본차들의 공세에 대응하려면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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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한전 부지 입찰은 과거 ‘승자의 저주’ 대표 사례로 손꼽히는 대우건설이나 극동건설, 남광토건 인수전과는 다소 다른 측면이 있다. 이들의 경우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외부차입에 의존했고 인수 이후에도 부실 문제로 추가 자금이 계속 필요했다. 하지만 한전 부지는 인수 이후 건설비 외에는 계속해서 자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자칫 자존심 경쟁에 휘말리게 되면 담당자들은 물러설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인수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면 인수 가격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전 부지 인수전에서 모두 승자가 되려면 역설적으로 ‘자존심’은 버리고 '냉정함'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