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담보 확보' 조건 600억 지원…신속 자금 수혈 '불투명'…'줄 소송' 등 난제 산적

미국 연방법원이 부두에서 배 압류를 막을 수 있는 '스테이 오더'를 승인,한진해운선박 4척이 항구에 들어가 짐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선박 압류를 피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세계 각지에서 떠돌고 있는 수십 척의 정상적인 하역 작업을 위해선 여전히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제때 자금 수혈이 절실한 상황인데 한진해운의 최대주주인대한항공(24,950원 ▼450 -1.77%)은 미국 롱비치 터미널 '담보 선취득' 조건을 전제로 6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당장 자금 투입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지원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 400억 원을 출연해도 전체 하역비 1700억 원에 턱없이 부족, 물류 대란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정부와 한진해운에 따르면 한진해운 소속 선박 한진그리스호가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에 입항해 하역 작업을 재개했다. 지난달 20일 부산항을 떠나 30일 항구 근처에 도착한 지 열흘 만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압류당할 것을 우려해 항구에 접안하지 못한 채 주변 해상을 떠돌았다.
하역작업 재개는 한진해운 측이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파산법원에 신청한 압류금지 및 임시보호명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받아들여진 탓이다. 추가 심리를 통해 3일 간의 조건부 압류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한진그리스호는 이날 하역비 150만 달러(약 16억5000만원)를 롱비치 항만터미널에 내고 터미널로 접안했다.
당분간 가압류 부담에서 벗어나 입항과 하역이 가능해졌지만, 하역 정상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할 컨테이너 선박이 아직도 41척에 달한다. 정부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보유한 컨테이너선 총 97척 중 하역을 완료한 선박은 총 20척이다. 국내 항만에 10척, 중국·베트남·중동 등 해외 항만에 10척이 하역을 완료했다.
나머지 선박 77척은 부산(광양ㆍ36척), 싱가포르(21척), 미국 롱비치(5척)·시애틀(3척)·뉴욕(3척), 독일 함부르크(3척), 스페인 알헤시라스(5척), 멕시코 만젤리노(1척) 등 거점항만 인근에 대기 중이다. 이 중 36척은 국내 항만으로 복귀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아울러현대상선(19,810원 ▼120 -0.6%)의 대체선박 투입과 머스크, MSC 등 글로벌 선사들의 부산항 경유 신규노선 개설로 국내 수출입업체들의 물류대란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에 6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단 사외이사들의 요구대로 조건을 달았다. 배임 소지 등을 이유 삼아 한진해운이 보유한 롱비치터미널 지분 등의 담보부터 취득하고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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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잡으려면 한진해운이 이미 담보 대출을 받은 6개 해외 금융기관과 또 다른 주주 MSC(지분 46% 보유)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당장 꺼야 하는데, 언제 동의를 얻어 자금을 집행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조 회장도 오는 13일까지 보유 중인 ㈜한진과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400억원 대출을 받아 한진해운을 지원키로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하역 협상을 완료한 미국 내 한진해운 선박 4척을 제외하고는 하역비 문제가 여전한 탓이다. 해운 업계는 배에서 짐을 모두 내리기 위해선 약 1700억 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하역이 이뤄져도 산 넘어 산이다. 철도, 트럭 회사 등이 한진해운 물량 수송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신속한 자금 투입 만이 사태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하역비는 물론 철도회사와의 운송비 협상도 함께 해나가야 하는 처지"라며 "용선료 등 선사들과 화주들이 제기할 '줄 소송'도 넘어야 할 난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대출(DIP 파이낸싱)' 제공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정부 관계자는 "법원, 관계부처와 함께 한진해운, 한진그룹, 채권단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해나가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