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어디라도 이겨"…묻지 않아도 '삼성' 강조한 일본, 대만 손 잡았지만

[르포]"어디라도 이겨"…묻지 않아도 '삼성' 강조한 일본, 대만 손 잡았지만

구마모토(일본)=오진영 기자
2024.01.03 06:30

['옛 반도체왕국' 일본의 역습] ④구마모토 JASM 공사 현장 가보니

[편집자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 한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옛 반도체 제국 일본의 얘기다. 일본이 쇠퇴하는 사이 한국이 왕좌에 앉았다. 이제 일본이 움직인다. 몰락 30년만의 권토중래를 꿈꾸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와 부활 전략을 면밀히 짚어보고, 타산지석의 교훈을 살펴본다.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 기쿠요정 앞 JASM 건물 모습. 사무동 건축이 끝나면서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내부 근무를 시작한 상태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 기쿠요정 앞 JASM 건물 모습. 사무동 건축이 끝나면서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내부 근무를 시작한 상태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규모가 정말 크죠? 삼성은 물론이고 어디랑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2023년 12월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 기쿠요정에 위치한 JASM 공사 현장. TSMC와 일본 소니, 덴소가 함께 만든 JASM 반도체 팹(공장)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수차례 삼성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6~7월까지만 하더라도 뼈대만 보이던 공장은 어느새 외관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부 설비 작업에 돌입했다. 눈으로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도쿄일렉트론(TEL)도 신공장 건축을 시작했다.

양배추 농사를 짓는 조용한 시골 기쿠치군의 분위기는 TSMC가 들어온 이후 180도 반전됐다. 곳곳에 인부가 오가고 대만·미국에서 방문한 기술자로 북적였다. 직접 본 공사 현장도 내년 2분기 생산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다. 다만 규모가 크지 않고, 해외 기업 주도의 프로젝트인데다 일본이 강한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반도체 재부흥'이 가능할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묻지 않아도 '한국 잡겠다'는 일본…현지서도 "가능할까?"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쿤 기쿠요정 JASM 공장 부지 건설 모습. 외관 공사가 끝나고 주차장, 휴식공간 등 부대 시설 공사 중이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쿤 기쿠요정 JASM 공장 부지 건설 모습. 외관 공사가 끝나고 주차장, 휴식공간 등 부대 시설 공사 중이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TSMC가 기쿠치군에 1공장과 2공장 건축을 시작한 뒤 인근은 반도체 허브로 탈바꿈했다. 공장 부지에서 도보로 20~30분 거리에는 소니의 공장과 TEL 공장이 입주해 있다. 규슈파이낸셜그룹에 따르면 70~80개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인근에 새로 둥지를 틀 전망이다. 아직은 논밭이 대부분이었지만, 자재를 실은 공사 차량이 끝없이 오가고 곳곳에 '공사 부지'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지역은 단연 JASM이다. 인근은 1시간에 기차 1~2대밖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지만, '반도체 붐' 영향으로 유동인구가 늘었다. JASM은 내부 사무동 건설이 마무리되면서 이미 업무에 착수한 상태다. 유리창 너머로 흰색 방진복과 모자를 걸친 연구원도 눈에 띄었다. 새로 짓는 2공장 현장뿐만 아니라 모든 내부 진입은 엄격하게 통제됐다. 게이트마다 보안 요원이 상주하며 접근 목적을 물었다.

대만과 일본이 합작해 만든 JASM 팹에는 우리 근무자나 자본이 투입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한국을 염두에 둔 모습이 엿보였다. 현장에는 일본어와 중국어 외에도 한국어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말이 나붙어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삼성이나 SK하이닉스를 언급하며 "외부로의 기술 유출을 막겠다"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쿤 기쿠요정 JASM 공장 부지 입구에 걸린 안내판. 한국인 작업자나 근무자는 없지만, 한국어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7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쿤 기쿠요정 JASM 공장 부지 입구에 걸린 안내판. 한국인 작업자나 근무자는 없지만, 한국어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그러나 JASM 팹으로는 한국과의 직접적인 경쟁 관계 형성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JASM 구마모토 공장에서 생산할 22·28나노미터(nm), 12·16nm 핀펫 공정은 우리가 이미 수 년 전 개발을 끝마친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달 찍어낸 웨이퍼는 400만장이 넘지만, 이 곳의 월간 최대 생산량은 5만 5000장에 불과하다. 부지 규모도 21.3헥타르(ha, 21만 3000㎡)로 평택 공장(289만㎡)의 10분의 1 크기다.

현지 업계서도 JASM 팹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특히 기업이 아닌 일본 정부가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보다는 뒤늦은 추격전에 가깝다. 새로 짓는 2공장도 레거시(구형)반도체를 주로 담당한다. 자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현지서도 '예정대로 시행돼도 10~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자조가 힘을 얻는다.

학계는 추가 투자 없이는 '반도체 재부흥'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익명을 요구한 구마모토 인근 대학의 한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기업구조상 수조~수십조원의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데, 반도체는 그 정도 투자를 해야만 성과를 얻어내는 일종의 치킨게임"이라며 "현재 일본 1위 라피더스조차 삼성과 20년 이상 격차가 벌어져 있는데, 구마모토 인근의 소규모 투자로는 현상 유지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금 잘 나가도 혁신은 필수,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뒤늦은 후회, 일본의 경고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일본 반도체의 때늦은 안간힘은 국내 기업에게도 울림이 크다. 혁신 없이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 투자에 인색했다는 점과 잘 하는 부분 대신 남들을 따라했다는 점은 최근 한국 반도체 업계를 둘러싼 우려 중 하나다. 반도체 시장은 AI(인공지능) 수요가 증가하면서 HBM(고대역폭메모리), DDR5(서버용 D램) 등 끊임없이 주류가 변화하고 있어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일본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보내는 경고도 '서둘러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쿠로다 타다히로 도쿄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오너가 적극 나섰던 한국에 비해 투자 시도가 늦었고, 인재 확보와 연속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세계 시장에 예민했던 한국에 비해 일본은 혁신이 부족했고, 과거의 경영 방식에 매달리다 보니 지금의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불황에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10대 반도체 기업의 투자 합계액은 163조원으로, 지난해보다 16% 줄었다. 최근 10년 새 최대 감소 폭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투자 규모가 지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호황에 시도하는 투자는 너무 늦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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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오진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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