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사상 첫 호남 출신 회장을 선출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당선인에 맞춰지는 게 당연지사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낙선한 한 후보의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사람은 나이가 50살이 넘고, 또 60살이 넘으면 살아온 길이 살아갈 길을 결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면서,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하는 말이… "(이하 생략)
비록 7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결하고, 깊이있는 그의 소견발표는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살아온 길' 그리고 '살아갈 길'….
이처럼 '길'이란 단어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 모두를 되돌아 보게 하는 '함의(含意)'가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백신총리'를 선언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취임 직후 '메르스 총리' '안전총리' 등으로 생활밀착형 행보를 이어온 황 총리는 얼마 전 강한 톤으로 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평생 '공안검사'로 살아온 그의 길 때문일까. 주변에서는 이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총리실이 중심이 돼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것 아니냐. 당분간 일 보다는 몸 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이래서 나온다.
백신대책을 둘러싼 사정기획설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4대 백신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이 재탕, 삼탕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부패척결에 대한 평가나 반성도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세부대책중 상당수가 정홍원 총리와 이완구 총리 당시 발표되거나 시행중인 대책들이다.
둘째, 그동안 추진해 온 규제완화 정책과의 엇박자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몇 년새 규제개혁을 중요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헌데 리스크(Risk) 관리강화의 방안으로 사전적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러한 기조와 배치될 뿐만 아니라 민간조직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킬 여지가 많다.
셋째, 예산 5조원 절감효과다. 백신대책을 통해 나라살림 중 5조원을 줄일 수 있다면 정부의 예산관리는 왜 이리 허술했던 것일까. 부정부패를 없애면 5조원이 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공무원들이 부정부패를 할 목적으로 5조원을 더 편성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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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타이밍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집권 4년차가 아닌 집권 초부터 했어야 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직무유기를 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밝힌 상황에서 사정은 왠지 '맞지 않는 옷'이다.
'사정(司正)'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인지 총리실은 연일 "이전 총리들이 잘못된 과거를 주 타깃으로 했다면, 황 총리의 관심은 부패의 사전적 예방활동에 있다"고 강조한다. 또 "실시간으로 부패를 감시하고, 부처간 정보를 공유해 부패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으로 정책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다.
결국 백신대책이 기획사정 등 구설을 넘어 성과를 거두려면 황 총리의 진정성과 실천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황 총리의 '실천'은 이제 '살아갈 길'이 될 것이고, 그 길은 다시 '살아온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세상 사람들은 그 길을 오롯이 평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