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거즈가 거의 꼴찌라고. 바둑 국수 조훈현 9단이 국회의원? 서울 명동에는 중국사람 천지고?”
1985년 전후로 유행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백투더퓨처'에는 시간여행 얘기가 나온다. 영화 속 시간배경인 1985년에서 30년 전인 1955년과 30년 뒤인 2015년을 오가는 것이 시리즈의 골격을 이룬다.
타임머신 기계 오류로 1955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기계 고장을 바로잡아줄 과학자에게 건넨 1985년 풍경 묘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985년에서 왔다면 그때 미국 대통령은 누구지?”
“로널드 레이건이요.”
“뭐 레이건, 영화배우 레이건? 그 삼류 배우 놈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기도 안 차다는 듯) 그럼 장관은 자니 카슨인가?”(참고: 레이건은 1940~6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해 70년대 주지사를 거쳐 80년대 대통령이 됐다. 자니 카슨은 30년 이상 방영됐던 유명 토크쇼의 진행자로 활동 당시 지명도로는 레이건보다 더 알려졌던 인물이다.)
난데없이 시간 여행 얘기를 꺼낸 건 무섭도록 변해온 기업환경과 금융사와 기업 등의 변신 때문이다. 말머리의 타이거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해태제과는 이달 말 상장을 위한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타이거즈가 해태가 아니듯 해태제과도 옛 그 회사가 아니다. 해태제과는 1945년 설립된 옛 해태제과의 제과사업부문을 넘겨받아 2001년 설립한 다른 회사로 2005년에는 경쟁사인 크라운제과가 경영권을 인수하며 주인도 완전히 바뀌었다.
주력제품도 조금씩 바뀌면서 '부라보콘'과 '맛동산'도 향수를 자아내지만 사람들은 '허니버터칩'의 해태를 더 많이 기억한다. 그런 해태가 ‘부채비율을 낮추고 해외로 더 뻗어나가려고’ 다시 상장을 하는 것이다.
상전벽해의 사례는 또 있다. 도로명 주소 때문에 기억하기 힘들지만 행정구역상 서울 중구 저동(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쯤이라고 말해야 쉽다)에는 유서깊은 영화관이 있었다. 한때 30대 대기업에 속했던 벽산그룹의 중앙극장이 그곳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명동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었던 이곳에는 증권사 건물이 들어선다.
황소상(상승장을 의미)과 더불어 여의도 증권가의 터줏대감인 대신증권이 30여 년 만에 둥지를 옮기는 것이다. 대신증권에 명동은 ‘영광의 터전’이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회사를 인수한 고(故) 양재봉 대신증권 명예회장의 진두지휘로 명동 옛 국립극장 사옥을 매수해 사옥을 지었던 1976년 이후로 상당기간 업계 수위권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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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무대였던 명동에서 대신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에프앤아이·저축은행 등 전 계열사가 한데 모여 금융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여의도에서 내실을 다진 만큼 재도약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벽산그룹(중앙극장)과 대신증권 모두 둥지를 옮기고 오간 데는 회사의 부침도 함께한다. 벽산은 IMF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금융위기 와중에 그룹 위상이 예전같지 않아지면서 모태 같았던 극장부지를 팔 수밖에 없었다. 대신증권은 1980년 증시침체로 회사가 어려워져 애초의 명동사옥을 팔아야 했고 여의도로 옮기면서는 오랜 기간 신영증권과 한지붕 두가족 생활을 했다.
회사들이 바뀐 것처럼 명동도 바뀌었다. 가장 비싼 땅이라는 곳(명동 8가길)들의 주인은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이 북적거리는 화장품 업체들이 됐고 우리은행은 명칭과 지배구조가 계속 바뀔 여지가 있다.
'백투더퓨처'의 드로리안 같은 타임머신을 탄다면 색다른 과거와 새로운 미래에 놀랄지 모른다. 걸그룹 소녀시대나 걸스데이의 아이돌들은 트로트가수나 국민이모가 돼 있고 이세돌은 알파고의 스승으로 인공지능의 대부가 됐을 수도 있다. 변화나 변동성은 금융투자회사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JP모간이 아닌 K-뷰티나 한류에 버금가는 스톡 한류나 한국형 IB의 미래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