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투자자들이 여성기업을 기피해서 펀드명에서 ‘여성’을 뺐습니다. 가능한 펀드명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지만 아직 이 업계에서도 유리천장은 높더라고요.”
여성벤처펀드를 운용하는 한 벤처캐피탈(VC) 대표의 얘기다. 여성벤처펀드를 선보이기 전 이 VC는 여러 여성기업에 투자해 좋은 실적을 거뒀기 때문에 투자유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최근 설립된 스타트업 중에는 로보어드바이저 ‘에임’, P2P 대표기업 ‘8퍼센트’, 먹을 수 있는 클레이 전문기업 ‘라이스클레이’, 베이비시터 플랫폼 ‘맘시터’ 등 소위 잘나가는 여성기업이 많아 여성벤처펀드 결성도, 투자도 쉬울 거라 여겼다.
하지만 여성벤처펀드는 결성부터 녹록지 않았다. 여성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근거 없는 편견이 걸림돌이 됐다. 펀드명에 ‘여성’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본 일부 투자자는 “다른 펀드 결성할 때 찾아오라”며 투자를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이 VC는 펀드명에서 ‘여성’을 지웠다. 대신 첨단산업에 투자한다는 의미로 펀드명을 수정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만 이후 펀드 결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VC업계에 이같이 여성벤처기업에 대한 편견이 뿌리깊이 자리잡은 것은 첫 단추를 잘못 채운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여성벤처펀드가 처음 결성된 건 2005년이다. 모태펀드가 50억원을 출자해 총 100억원 규모로 펀드가 운용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후 8년간 운용되지 않다 2014년부터 여성과학인 육성을 위한 정책에 따라 다시 매년 100억~150억원 규모로 결성됐다. 업계의 부정적인 시각을 감안해 모태펀드 출자 비중은 60~70%로 높은 수준이며 기준수익률도 0%를 적용해 VC에 유리한 상황이다.
여성벤처기업 육성은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청년창업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여성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2018~2022년 여성벤처펀드 결성규모를 당초 500억원에서 90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특히 민간출자자의 수익성 제고와 펀드 결성 촉진을 위해 올해부터는 콜옵션 최고한도를 지난해 0%에서 50%로 대폭 상향했다.
과거와 달리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벤처기업의 전문성이나 성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과거 성과에 연연해서 미래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