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는 "우둔한 자는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우둔한 축에도 못 속하는 것 같다. '안전불감증'이라는 '클리셰'가 언론에 도배될 때마다 또 다시 다른 참사가 터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인다. 경험으로라도 배워야 하는데 역사는커녕 겪고도 또 유사한 사건을 쉽게 직면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의 기억은 너무도 강렬해 모든 국민의 머리 속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앞. "고(故) 장XX...故 박XX..." 한 명씩 사회자가 호명하자 유족이 나와 영정사진을 건네 받는다. 노란색 자켓을 걸친 다른 유족들은 앉아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또 다시 눈물을 터트린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3개월 뒤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천막이 세워진 이후 약 4년 8개월, 1707일 동안 꼬박 광화문광장 한 켠을 지켜왔다. 서울시가 새로운 추모공간 조성을 약속하면서 사계절 자리를 지킨 세월호 천막은 철거됐다.
유족들은 추모공간 조성까지 영정사진을 서울시청 신청사로 임시로 옮기는 이안식(移安式)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이운식이라고 불렀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고인들의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월호 천막 철거가 사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담은 듯했다.
2014년 최악의 참사이자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자식들의 죽음의 이유를 묻고자 단식, 삭발, 물대포와 맞서기도 했지만 '진상규명'은 아직도 요원하다. 미제사건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안식 다음날인 18일 본격적인 천막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막상 철거되는 광경을 보니 늘 무심하게 지나쳤던 모습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미안함, 안타까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조롱하듯 진행하는 한 유튜버의 세월호 천막 철거 중계 때문이었다. 진영을 떠나 인간은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한다.
세월호 유족들의 고난은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판의 진영 논리에 덧씌워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단식을 하는 유족들 앞에서 '먹방' 퍼포먼스를 보이거나 이날처럼 "추모공간 조성 적극 저지"라며 비아냥댔다.
세월호 참사는 왜 젊은 학생들이 우리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야 했느냐는 반성의 문제다. 사람의 생명이 우선되는 문제이지, 정치적 진영논리로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 대 인간, 국민 대 국민으로서 고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음에 새기는 것이 인간적 예의가 아닐까. "
